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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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만의 비상계엄…“긴박했던 서울의 밤”

尹대통령 비상계엄 선포…긴박한 상황 전개

계엄사령부 포고령 발표…계엄군 국회 진입

국회 비상계엄 해제 결의…계엄군 철수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군이 국회로 진입하는 등 전국적으로 긴박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전군 지휘관 회의를 소집하고, 전군에 비상경계 및 대비태세 강화를 지시했다.

 

뉴시스

 

이에 따라 대대장급 이상 지휘관은 즉각 비상대기에 돌입했으며, 국방부 전 직원도 출근 명령을 받았다. 공중 전력의 대다수가 출격해 공중 감시와 초계 임무를 수행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다. 박 계엄사령관은 같은 날 오후 11시,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다.

 

이후 자정을 넘길 무렵 계엄군이 국회 경내로 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검은색 유니폼과 위장 무늬 전술장비를 착용하고 야간투시경과 총기로 무장한 이들 병력은 특수전사령부 또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으로 추정됐다.

 

계엄군은 국회 본청에 진입하려는 과정에서 보좌진들과 충돌하며 유리창을 깨거나 창문을 넘어 진입하는 등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회에 모인 190명의 국회의원은 4일 오전 1시를 넘겨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비상계엄 선포는 법적 유효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계엄군은 국회에서 철수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오전 1시 15분, "국회 본청으로 들어왔던 군인 전원이 철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뉴시스

 

한편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우리나라 헌정사상 45년 만에 처음으로 이뤄졌다. 마지막 사례는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직후로, 당시에는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이후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정치활동 중지와 대학 휴교, 영장 없는 체포 및 구금 등을 골자로 한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0호를 발표했다.

 

당시 계엄사령부는 김대중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총리 등 정치인 26명을 연행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을 가택 연금시키는 등 강압적인 통치를 이어갔다. 결국 1980년 8월 16일, 최규하 당시 대통령이 사임하며 신군부의 권력 장악이 완료됐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