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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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흘린 최순실 “내가 뭘 했냐…명태균 보면 난 10% 정도”

안민석 명예훼손 재판 증인 출석해 대면
박근혜 때 청탁 질문에 “여보세요” 분노
“국민 선동·가짜뉴스 처벌해야” 고성·눈물
지난 2016년 12월19일 오후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관련한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대법정에 최씨가 들어서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핵심 인물인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가 자신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안민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 공천 개입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와 자신을 비교하기도 했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19단독 설인영 판사 심리로 전날 오후 열린 안 전 의원의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혐의 사건 공판에서 검찰이 신청한 증인 최씨에 대한 증인신문이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복역 중인 최씨는 검정 뿔테 안경과 하얀색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복 차림으로 법정에 나타났다. 허리 통증을 이유로 증인석에 마련된 의자 대신 휠체어로 바꿔 앉기도 하며 증언했다.

 

그는 안 전 의원이 한 발언 등이 사실인지 묻는 검사 질문에 “(안민석이) 국민을 선동한 것이다. 제가 왜 이런 누명을 써야 하냐”며 대부분 허위라고 주장했다. 이어진 변호인 반대신문에서는 “답변하지 않겠다. 근거도 없는 얘기”라며 날을 세웠다.

 

최씨는 변호인의 반대 신문 내내 “지금 국정농단 조사하냐” “변호사 자질이 없다” 등 날 선 반응을 이어갔다. 회사 대표자에 최씨의 이름이 있거나 최씨와 관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회사를 알거나 운영한 적이 있는지 묻는 변호인에게 “사건과 관계없다” “답변하지 않겠다”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답했다. 변호사가 거듭 질문을 이어가자 “국정농단 검사냐” “그런 의혹 제기는 왜 하냐. 페이퍼 컴퍼니 만든 적 없다” “다른 의혹 제기하지 마라” 등 날카롭게 반응했다.

 

재판부가 “질문을 잘 듣고 얘기하라”고 한차례 진정시켰음에도 “잘못하면 또 허위 보도가 나간다”며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답변 대신 안 전 의원을 향한 비난을 쏟아냈다.

 

안 전 의원의 변호인이 현재 보유 재산에 대해 질문하자 “재산 다 뺏어가지 않았느냐, 안민석씨 때문에 거지 됐다. 안씨가 좀 찾아줘라”고 말하며 손을 뻗어 피고인석에 앉아있는 안 전 의원을 가리키기도 했다. 또 “방산업체 선정 과정에서 당시 서열 1위였던 증인이 관련되지 않았느냐”고 묻자 “제가 서열 1위면 비서실장 했을 텐데 왜 뒤에 숨어있었겠느냐. 안씨처럼 국회의원이라도 돼서 면책특권 내세우지 않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증인과 박근혜 전 대통령 친분은 말할 필요가 없는데, 재임 중 업무적으로 여러 이야기한 것으로 보인다. 청탁을 위해 접촉하는 사람들이나 회사 관계자가 있었느냐”는 변호인 질문이 나오자 “여보세요. 지금 명태균씨 나오는 거 보면, 저는 (그에 비하면) 10% 정도 한 거다. 제가 뭘 했다는 거야. 사드는 안민석 씨한테 처음 들었다”고 답했다.

 

최씨는 “정부가 차세대 전투기로 록히드마틴사의 전투기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증인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느냐”는 변호인 질문에 “그렇게 의혹 제기하면 변호인도 (명예훼손으로) 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답변 과정에서 최씨는 안 전 의원을 향해 “왜 웃냐”며 지적하기도 했다. 흥분 상태로 답변을 이어가던 최씨는 재판장에게 휴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10여 분간 휴식 후 재개된 증인신문에서도 최씨는 거듭 분통을 터트렸다. “대부분 모른다고 증언 거부를 하는데 당시 국민이나 양심에 부끄러운 점이 없냐”는 변호인 질문에 그는 “안민석이 날조한 것이다. 법에 따라 한 건데 왜 날조된 것에 대해 답변해야 하냐”고 재차 언성을 높였다.

안민석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최씨는 이후 별도의 발언 기회를 얻은 뒤 미리 작성해 온 글을 읽어 내려갔다.

 

그는 “제가 오늘 증인으로 서게 된 이유는 2016년 국정농단 당시 나를 혼돈에 빠트리고 사법 체계를 무력화시키는 등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안민석씨의 거짓을 낱낱이 밝히기 위해서”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어 “안씨가 만들어낸 가짜뉴스 중 가장 악랄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자금을 비자금으로 연결해 제가 스위스 비밀계좌에 은닉했다는 것”이라며 “당시 어려운 나라 살리려고 새마을 운동한 국민과 파독 간호원, 광부를 모욕하는 것인데, 안씨는 지난 10년에 가까운 기간 사실관계 확인도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안씨가 주장한 비자금을 제가 어디에 어떻게 은닉했는지 밝혀야 할 것이다. 방산업체 회장과 사드 거래설에 대해 내가 얼마나 받아먹었는지 정확하게 말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다면 국민을 모독하고 거짓을 선동한 썩은 정치인은 처벌받아 마땅하다. 선동정치,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안민석 같은 정치인이 근절되도록 이 재판을 이끌어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앞서 최씨는 안 전 의원이 라디오 등 방송에 출연해 자신과 관련한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며 고소했고, 검찰은 지난해 11월2일 안 전 의원을 불구속 기소했다.

 

안 의원은 2016년 라디오에 출연해 “최순실의 독일 은닉 재산이 수조원이고, 자금 세탁에 이용된 독일 페이퍼컴퍼니가 수백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독일 검찰로부터 확인했다”, “최순실이 외국 방산업체 회장을 만나 무기 계약을 몰아주었다”, “스위스 비밀계좌에 입금된 국내 기업 A사의 돈이 최순실과 연관되어 있다” 등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발언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안 전 의원은 최씨가 자신을 고소한 데 대해 “정권이 바뀌자 검경이 최순실의 손을 들어주고 기소를 남발하니 최씨가 신이 난 모양”이라며 “최씨가 이번에 장시호에게 안민석 뒷조사를 시켰다고 한 저의 발언을 사실이 아니라며 명예훼손이라고 기소했다는데, 이것은 법정에서 나온 장시호의 분명한 증언”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저에 대한 때늦은 검찰 기소와 최순실 측의 추가 고소는 총선을 앞두고 이 정권과 과거 회귀 세력이 국정농단을 부정하고 탄핵을 부정하고 촛불시민혁명을 부정하려는 나쁜 의도”라고 주장했다.

 

이후 안 전 의원 측은 첫 공판에서 “발언 내용을 보면 피해자의 사적 영역에 대해 악의적 표현한 것은 하나도 없고, 전 국민적 관심 대상이었던 은닉재산에 대한 국민적 확인 열망을 대변한 것이지 명예훼손 고의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안 전 의원의 다음 재판은 내달 21일 열린다. 해당 재판에서는 안 전 의원 측에서 신청한 주진우씨 등 3명의 증인신문이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최씨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가담한 혐의로 지난 2020년 6월 대법원에서 징역 18년, 벌금 200억원, 추징금 63억원 등의 형이 최종 확정됐다. 이미 유죄가 확정된 ‘이화여대 학사비리’ 형량까지 합하면 2037년 10월에 만기 출소한다. 최씨는 2016년 10월 구속돼 현재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최씨는 “허위 기소로 억울하게 복역 중”이라며 당시 특별검사팀(특검)을 상대로 2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1심에 이어 최근 2심에서도 패소했다. 그는 2017년 특검이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제출한 태블릿PC 주인을 최씨로 허위 조작하고 언론에 발표했다며 지난 2022년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10월22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