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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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문제, 남성의 무책임에 주목하라

정확한 콘돔사용 등 피임 의무 강조
낙태 논의서 빠진 남성 역할 초점

혼외 출산 인한 영아살해·유기 등
그 이면에는 ‘몰염치한 남성’ 존재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 가브리엘르 블레어/ 성원 옮김/ 은행나무/ 1만7000원

 

이것은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권희정/ 날/ 1만7000원

 

배우 정우성이 모델 문가비와 아들을 낳았으며 결혼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후 여론이 들끓었다. 이 사안은 톱스타의 스캔들 이상으로 파장을 낳았다. 비혼 출산에 대한 지지부터 남성의 동의 없는 일방적 출산, 여성의 자기 결정권과 낙태권, 태어난 아이의 인권까지 많은 이가 혼란스러운 생각을 쏟아냈다. 이 혼란상 뒤에는 남녀의 충돌하는 이해관계를 어찌 조율할지, 태어난 생명의 권리는 어떻게 보장할지 같은 물음이 놓여 있다. 한 가지 진실도 새삼 상기시킨다. 생명 그 자체의 막중한 무게다.

 

신간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는 미국에서 첨예한 주제인 임신중단(낙태)을 다룬다. 그간 낙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 태아의 생명권 차원에서 주로 논의됐다. 이 책은 낙태 논의에서 쏙 빠졌던 남성들을 끌어들인다. 한마디로 ‘남성들이 제대로 행동하면 낙태 찬반 논쟁까지 갈 이유가 없다’는 것.

 

신간 ‘책임감 있게 사정하라’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대 태아의 생명권 위주로 대립해온 낙태 문제에 대해 “모든 원치 않는 임신의 원인은 남자”라며 남성의 책임으로 논의의 추를 옮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올해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시위 중인 낙태권 찬성단체들. 워싱턴=AP연합뉴스

저자는 여성 크리에이터와 기업가를 위한 커뮤니티의 설립자이자 여섯 아이의 어머니로 임신중단 문제에 목소리를 내왔다. 그는 “당신이 임신중단을 줄이는 데 관심이 있다면… 임신중단에 초점을 두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여자에게 초점을 두는 것 역시 해답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어 “당신이 정말로 임신중단을 줄이고 싶으면… 임신중단 대신 원치 않는 임신을 예방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려면 (남성의) 무책임한 사정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정관절제술을 받은 남자, 콘돔을 항상, 정확하게 사용하는 남자, 무방비한 성관계를 거절하는 남자… 이렇게 하지 않는 모든 남자는 무책임하다”며 낙태 문제에서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책은 생물학적 이유를 그 근거로 든다. 여성이 40년간 월경을 한다면 평생 생식 가능한 날은 대략 480일이다. 반면 남성은 생식 가능한 날이 약 2만4208일이나 된다. 여성보다 50배 이상 많다. “남자의 생식 능력은 모든 원치 않는 임신을 유발하는 주요 동력”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가브리엘르 블레어/ 성원 옮김/ 은행나무/ 1만7000원

여성의 가임기 여부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여성의 피임을 힘들게 만든다. 2020년 과학저널 ‘휴먼리프로덕션 오픈’에 따르면 여성 3만2595명을 연구한 결과 이 중 52%가 월경 주기에 5일 이상의 변칙이 있었다. 월경주기가 28일인 여성들도 배란일에는 10일에 달하는 차이가 존재했다. 그만큼 월경주기와 배란일은 변덕스럽다. 여성의 몸에 들어간 정자가 닷새 동안 생식 능력을 갖는 것도 임신 예측을 어렵게 한다. 게다가 미국에서는 여성용 경구피임약을 처방받기 번거로운 데다 여러 부작용이 수반된다. 경구피임약은 우울증, 피로감, 두통, 불면증, 구토, 체중 증가, 부기, 혈전, 심근경색, 고혈압, 간암, 뇌졸중 등을 유발할 수 있다.

 

반면 콘돔을 이용한 남성의 피임은 간편하고 확실하다. 난관결찰술(자궁관 묶기)과 달리 정관절제술은 국소마취만 하고 시술 직후 바로 운전해서 갈 수 있다. 저자는 또 “남자는 자신의 정자를 언제, 어디에 배출할지 실질적으로 통제할 수 있지만 여자는 자신의 난자를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며 이런 이유로 “모든 원치 않는 임신의 원인은 남자”라고 꼬집는다. 그렇기에 낙태 논의는 남성의 책임 있는 행동에 대한 강조로 초점을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권희정/ 날/ 1만7000원

원치 않는 임신은 낙태뿐 아니라 영아 살해·유기 등으로 이어진다. 신간 ‘이것은 사라진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류가 태어난 아이들을 방치하고 숨지게 한 사례를 추적한다. ‘태어난 아이들이 잘살아야 태어날 아이들도 잘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살해·유기·방임·입양된 태어난 아이들을 살펴본다.

 

잘 알려졌듯 영아 살해는 현대에 갑자기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한국의 경우 혼외 출생아의 목숨을 빼앗은 사건은 1900년대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과부라서, 먹고살기 힘들어서, 미혼이라서, 딸이라서 많은 아기가 숨졌다. 그 이면에는 여성과 아기를 버린 몰염치한 남성이 있다. 1963년 5월 전남 광양읍의 한 과부는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이 두려워 여아를 분만하고 질식시킨 후 다리 아래 버렸다. 1931년 경북 김천군에서는 18살 장녀가 혼외자를 낳자 부모가 아이를 연못에 버렸다. ‘에밀’을 통해 이상적 교육을 설파한 18세기 사상가 장자크 루소는 정작 자신의 혼외자 다섯 명을 보육원에 유기했다.

 

가족이 방임한 아이들은 보육원을 나오는 순간 혹독한 세상과 마주한다. 저자는 보호종료 청년을 직접 인터뷰해 실상을 고발한다. 현재 한국은 위기 상황인 산모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보호출산을 할 수 있는 심리·신체적 어려움이 무엇인지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이 한계다. 베이비박스 역시 원가족과 아기가 헤어지는 한계가 있다. 저자는 “원가족과 살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아동의 고유한 권리”라며 아기가 버려지지 않게 법과 제도를 탄탄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