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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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지는 尹의 침묵… 사과 담화도 탄핵안 표결 이후로 보류 [비상계엄 후폭풍]

정상회담 등 공식 외부 일정 모두 취소
국방장관 인선 발표한 정진석 실장도
별도 질의응답·백브리핑 등 없이 퇴장

尹 “野 폭거 때문에 계엄” 정당성 강조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사의 표명 반려
與 요구 탈당·임기단축 개헌에 무대응

윤석열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틀째 공식 일정을 취소한 채 침묵을 이어갔다. 윤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담화를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사과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7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이후로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5일 별도의 공식 일정을 진행하지 않았다. 당초 이날부터 7일까지 방한 예정이던 울프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포함해 이번주 모든 공식 일정을 취소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를 해제한 지난 4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이 비상계엄 사태 관련 보도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대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윤 대통령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면직하고, 신임 국방장관에 최병혁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를 지명했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최 대사에 대해 “규정을 준수하는 원칙주의자로 상관에게 직언할 수 있는 소신도 겸비했다”고 소개했다. 이는 비상계엄 건의로 전임자가 물러난 만큼 이를 고려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최 후보자는 김 전 장관과 함께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다.

 

정 실장의 인사 발표는 이번 사태 이후 대통령실 고위 인사의 첫 공개 일정이다. 굳은 표정으로 회견장에 들어선 정 실장은 1분간 원고를 읽고는 질의응답 없이 별도 출입문으로 퇴장했다. 그동안 인선 발표 직후 질의응답이나 백그라운드브리핑(비공식 회견)을 진행한 경우가 많았지만 이날은 기자들의 질문에 말을 아꼈다. 이도운 홍보수석과 관계자들도 배석했지만 별다른 언급 없이 자리를 떠났다. 윤 대통령은 전날 정 실장을 비롯한 대통령실의 국가안보실장과 정책실장, 정무수석과 민정수석비서관 등 8수석비서관의 사의 요구를 받았지만 수리하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의 교체는 대통령실이 이번 사태 이후 처음 내놓은 수습책이다. 다만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당 소장파가 요구한 계엄 관여 군 관계자들에 대한 직위 배제까지는 진행되지 않았다.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전날 국방장관에게 사의를 표명했지만 이를 윤 대통령이 이날 반려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최근 엄중한 안보 상황하에서 안정적인 군 운영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육군참모총장으로서 임무수행에 매진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가 요구하는 탈당이나 소장파가 주장하는 임기단축 개헌 등 자신의 거취나 임기와 관련해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이유 중 하나로 언급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과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이날 국회를 통과했지만 대통령실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질문 받지 않고 퇴장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이 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신임 국방부 장관에 최병혁 주사우디대사를 지명했다고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지 않고 퇴장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대통령실의 침묵은 탄핵안 표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이날 3차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 사태로 국민께 혼란을 야기한 점을 사과하고 계엄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려 했으나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모들은 자칫 사과나 계엄과 관련한 설명이 여론에 악영향을 미쳐 이탈표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3차 담화와 관련해 “오늘 대통령 입장 발표는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탄핵안 투표 이후 윤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밝힐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전날 한 대표를 만나서도 “야당의 폭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계엄을 한 것”이라며 계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탄핵안 표결이 임박한 만큼 주말까지는 기존 일정을 취소한 채 수습책 마련에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에도 정 실장 중심으로 대통령비서실 핵심 참모들이 모여 현안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개로 대통령실은 탄핵안 결과에 따른 대책 마련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탄핵안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갈 경우 최소 수개월간 탄핵 심판이 이어지는 만큼 이에 대한 법률적 대비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동안 진행해 왔던 4대 개혁 등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들은 당분간 힘을 잃게 됐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전날 외신 등을 중심으로 입장 설명에 나섰지만 여론의 인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외신 등에 따르면 대통령실 관계자는 “계엄은 합헌적인 틀 안에서 이뤄졌다”며 “국가 안보를 훼손한 세력에 대한 불가피한 대처이자 국정 정상화와 회복을 위한 조치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또 “국민의 삶과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밤늦은 시간 긴급 담화를 발표했으며 계엄군의 국회 투입은 담화 발표 1시간 후에 진행됐다”며 의원들의 계엄 해제 결의안 투표를 막으려는 것이 아니었다는 취지다. 그러나 이날 국회 상임위원회에 출석한 관련자들의 진술에서 이와 배치되는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대통령실은 계엄 사태에도 “한·미 관계는 여전히 잘 유지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 한 관계자는 “정부 고위급에서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와 통화하는 등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오픈라운지 발언대의 휘장(CI). 뉴시스

한편 대통령실 핵심 참모와 관계자들은 비상계엄 선포·해제 이후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는 모습이다. 참모들은 외부인과의 약속을 대부분 취소한 채 구내식당을 이용하거나 주로 직원들끼리 모여 대통령실 인근에서 식사를 했다. 특히 대부분의 참모들은 현안에 대해선 말을 아끼며 언론 접촉을 피했다.


조병욱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