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5일 야권이 추진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를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비상계엄 선포를 “반헌법적”, “잘못된 것”이라고 규정하고 국회의 계엄 해제를 주도했던 그이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감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트라우마가 워낙 강한 원내에서 탄핵 반대 당론을 정하자 윤 대통령 탈당을 촉구하는 선에서 정국을 수습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대표는 이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계엄 선포 당일보다, 사실 어제, 그리고 오늘 새벽까지 더 고민이 컸다”며 “당대표로서 이번 탄핵은 준비 없는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계엄 사태 이후 그가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날 사태 수습책으로 요구한 내각 총사퇴, 김용현 국방부 장관 해임, 탈당 중 어느 하나 뚜렷하게 수용된 것이 없으나, 이날 0시쯤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확정한 비상의원총회 결정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한 대표는 당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이같이 입장을 정리한 이유로 “범죄 혐의를 피하기 위해 헌정사에 유례없는 폭거를 일삼으며 정권을 잡으려는 세력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된다면 자칫 민주당 이 대표의 대권가도만 열어줄 수 있다는 우려를 내보인 셈이다.
친한(친한동훈)계 의원은 이를 두고 전화통화에서 “탄핵소추가 되면 그 자체로 여러 혼란이 생길 수밖에 없고, 결국은 우리가 그렇게 범죄자라고 공격해왔던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 되는 걸 순순히 지켜보게 되는 것밖에 안 된다”며 “그런 상황은 정권 창출이 목적인 정당의 대표가 가질 수 있는 선택지는 아니잖나”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 상당수가 찬성했음에도 이후 상당 기간 유권자로부터 용서나 기회를 받지 못한 채 외면당했던 탄핵 트라우마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탄핵 주장에 동조했다가 ‘배신자 프레임’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이날 CBS라디오에서 “한 대표가 탄핵에 동의하면, 현실은 그 세력에서 배신자가 되게 생긴 것”이라며 “그게 참 난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한 대표는 다만 윤 대통령의 상황 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전날 회동에서 ‘민주당 폭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상계엄을 했다’고 말한 것을 거론하면서 “이 사태에 대한 대통령 인식은 저나 국민의 인식과 큰 차이가 있었고 공감하기 어려웠다. 민주당 폭거는 반드시 심판받아야 하지만 위헌·위법한 비상계엄을 합리화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 등 계엄 관련자들이 책임을 질 것과 계엄에 직접 관여한 군인들 직무 배제를 통해 ‘2차 계엄’ 우려를 덜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대표는 또 “이번 사태는 자유민주주의 정당인 우리 당 정신에서 크게 벗어난다”며 윤 대통령의 탈당을 재차 요구했다. 그러나 한 대표와 당권 경쟁을 벌였던 원희룡 전 국토부 장관은 “대통령 탈당 요구 같은 경솔한 언동은 우리에게 절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김재원 최고위원도 “우리에게 이견이 있더라도 반드시 단일대오로 나가야 한다”고 하는 등 ‘윤 대통령 탈당론’이 당내에서 힘을 받을지도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