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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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전 비상계엄 겪은 광주시민들…되살아난 충격·공포 [이슈 플러스]

“45년 전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총칼이 떠올랐어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지 나흘째인 7일, 광주시민들은 44년 전 5·18민주화운동 당시 경험한 아픈 상처가 다시 떠올랐다. 어제 겪은 일처럼 기억이 뚜렷하게 되살아났다.

'윤석열 정권 퇴진 광주비상행동의 3차 광주시민 총궐기대회'가 열린 6일 오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실제 5·18민주화 운동에 직접 참여했던 5·18유공자들은 “계엄군의 군홧발 소리가 떠오른다”며 치를 떨었다. 혹시나 군인들이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기라도 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한숨도 못 잤다. 또 피를 부르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며 “5·18 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3일 오후 10시23분쯤 긴급 대국민담화를 열고 야권의 정부 각료 탄핵 시도와 단독 입법, 예산안 감액을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45년만이다.

 

다행히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안을 재석 190인 가운데 찬성 190인으로 통과시키면서 비상계엄은 해제됐다.

 

하지만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해제되는 과정에서 5·18 당사자와 시민들은 44년 전 트라우마에 몸서리를 쳤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김공휴 5·18부상자회 총무국장은 “어렵게 일궈낸 민주주의가 군홧발에 또다시 짓밟히는 무서운 상상을 했다.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에서 총을 든 계엄군과 우리 시민들이 대치했던 상황이 스치면서 소름이 돋았다"며 "계엄군을 동원한 국회 동원 시도는 흡사 돌아온 전두환의 망령을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허연식 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2과장은 “더 이상 군부와 독재자가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상황이 재현되지 않도록 만들어 둔 헌법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44년 전을 겪은 사람들은 당시 상황을 똑같이 떠올렸을 것”이라며 “비상계엄령이라는 다섯 글자가 주는 충격과 후유증이 광주 지역사회에 여전하다”고 토로했다.

 

광주시민들은 5·18민주화운동의 항쟁지인 동구 옛 전남도청 5·18민주광장에서 ‘헌정 유린, 내란 수괴 윤석열 체포·구속 촉구 광주시민비상시국대회’에 참여해 그 당시의 쓰라린 상흔을 되새기고 있다. 

 

시민 이모(57)씨는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는 사건이 되풀이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스럽다. 시민들은 항상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는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해왔는데 또 뇌관이 됐다”며 “민주주의는 국가권력이 아닌 시민들의 것이다. 끝까지 시민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5·18기념재단과 공법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는 “대통령 윤석열은 즉각 반성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 역사의 심판을 받으라”고 촉구했다.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군인들이 국회 안으로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뉴시스

이 단체는 “비상계엄 조치가 온 나라 국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만들고 국제사회를 뒤흔들었다”며 “1979년 10·26 이후 45년만의 비상계엄이었다. 이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를 연상케 했다. 한마디로 느닷없고 황당한 비상계엄 선포였다”고 비난했다.

 

5·18민주화운동은 1979년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군사반란 세력이 19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이미 내려진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면서 비롯됐다. 12·12 군사반란으로 군권장악에 성공한 전 전 대통령은 완전한 정권 장악을 위해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라는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전국이 숨죽이고 있을 때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총칼에 맞섰지만 신군부의 잔혹한 진압에 희생됐다.

 

시민들은 이번 계엄해제가 오판의 역사가 되풀이됐지만 유혈사태로 이어지지 않은 데는 5·18의 교훈이 컸다는 분석이다.

지난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계엄령 선포에 반대하는 시민 및 이를 저지하는 경찰 병력들이 모여 혼잡스러운 상황을 빚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비상계엄에서 무장을 한 계엄군이 국회의 창문을 깨고 진입하기도 하고, 일부에서는 몸싸움도 벌어졌다.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했고,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서 6시간 만에 해제됐다. 이번 계엄에서는 군이 강경 진압 작전을 펼치지 않았고, 국회의 결의안이 통과되자 2시간여 만에 해산했다.

 

대법원은 1997년 5·18 관련 판결에서 민주적 절차에 의하지 않고, 폭력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를 내란죄로 봤다. 동조한 군 관계자들도 내란죄 공범으로 판단했다. 

 

군대를 동원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비상계엄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모두 11번 있었다.

 

윤 대통령의 이번 비상계엄 선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이다.

 

비상계엄이란 대통령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 시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 군사상 필요에 따르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선포하는 계엄을 말한다


광주=한현묵 기자 hanshi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