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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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소추안 부결됐지만…‘식물대통령’ 불가피한 외교공백

미 권력이양기 트럼프 2기 정부와 한·미동맹
대북정책 등 조율 어떻게 하나

윤석열 대통령탄핵소추안이 7일 국회에서 부결됐지만, 식물 대통령이 불가피한 만큼 외교 공백은 불가피하다. 특히 미국 신 행정부 출범 직전, 권력 이양기에 중요한 대미 외교 공백이 생기는 만큼 상당할 파장이 예상된다. 윤 대통령이 취임 후 최대 치적으로 한·미 동맹 강화를 내세운 만큼 더욱 그렇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 등 야당 의원들이 7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해제요구결의안에 참석한 국민의힘 의원들의 이름을 호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8년 전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도 최고위급에서의 실질적인 외교는 사실상 마비 상태가 됐다. 그때와 비교해 이번엔 현직 대통령 본인이 선포한 비상식적인 계엄령으로 사태가 촉발됐다는 점에서 대외정책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더욱 심각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헌법 66조 1항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규정됐다. 이날 부결로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그대로 수행하겠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미국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이 임박했다. 무엇보다 도널드 프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한·미 동맹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며,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대한 의지도 수차례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한·미 동맹과 북핵·대북 정책 등과 관련해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사전 조율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윤석열정부가 사실상 국정운영이 어려워진 만큼 효과적인 대미 정책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이번 계엄사태와 관련, 부정적인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브래드 셔먼(70) 의원(민주·캘리포니아)은 워싱턴의 의회 의사당내 하원 본회의장에서 열린 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완전히 터무니없는 일로,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자 민주주의와 법치를 위한 전 세계의 노력에 대한 모욕이었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대선과 함께 치러진 선거에서 승리한 것을 포함해 연방 하원 15선의 중진인 셔먼 의원은 한반도평화법안을 대표 발의하는 등 남북 간 화해·협력을 지지해왔다. 

 

김민기 국회 사무총장(왼쪽부터),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박찬대 원내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정명호 의사국장이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18회국회(정기회) 제17차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투표 참여를 기다리던 중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전문가들은 국정 운영의 동력을 상실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상과 정상적으로 외교를 추진하려 할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의 차기 지도자가 국민적 신뢰를 얻어 등장해 사회를 안정시키기 전까지는 모든 정상회담 및 동맹 관계는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종건 전 외교부 차관(연세대 교수)은 "국민에게 지지받지 못하는 타국 정부와의 협력을 어떤 국가가 자랑스럽게 얘기할 수 있겠느냐"며 "지난번 대통령 탄핵 전후 시기에는 의례적인 것 빼고는 아무런 정상적인 고위 외교가 없는 공백기였다"고 말했다. 최 전 차관은 "상식과 순리 안에 머무르지 않는 대통령의 선택으로 한국은 밖에 드러난 것 이상으로 엄청난 내상을 입은 것"이라며 "당장은 이를 해결하는 방안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심각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고민희 이화여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임기가 끝나가는 시점이라 (비상계엄 사태가) 한·미 동맹에 갖는 시그널이 분명하다고 보기는 힘들다"며 "트럼프 정권에서 동맹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한국을 끼워줄지 아닐지도 모르는 상황이고 윤 대통령 임기도 불확실해서 일단은 상황을 좀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다만 고 교수 역시 "탄핵이든 사임이든 간에 '리스크 헤징'이 되려면 대안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며 "윤 대통령의 강한 반북 정책, 친미 시그널을 좋게 보던 미국 정치권이 '윤 대통령을 너무 믿고 있었나' 하는 의구심을 가짐에 따라 우리에게 부과되는 부담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스트롱 맨'인 줄 알았던 한국의 현직 대통령의 실체를 목격한 미국, 일본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여전히 당혹감 속에서 한국과 일단 거리두기 하며 사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정지혜 기자 wisdo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