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 후 국내 상장 주식의 3분의 1이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외국인들은 특히 금융업종에 대한 투자를 앞다퉈 철회하면서 자금 회수에 나서는 양상이다. 정치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내년 초까지 주식시장이 지지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분의 1이 ‘52주 신저가’
8일 금융투자업계와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 후 첫 거래일인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장중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종목은 953개였다. 52주 신고가를 기록한 30개와 비교할 때 약 32배 많은 수준이다. 이는 현재 거래 중인 코스피·코스닥 상장 종목 2631개의 36%에 달한다.
이 기간 코스피 시장에서 267개, 코스닥에서 686개 종목이 각각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52주 신저가 비율은 코스닥이 41%로 코스피 28%보다 높았다.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후 코스피는 사흘 연속 내렸는데 이 기간 하락률은 2.88%에 달한다. 코스닥 지수도 같은 기간 4.27% 급락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동해 심해 가스전 사업(대왕고래 사업)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지난 6일 동양철관(590원), 디케이락(6240원) 등 관련 테마주가 52주 신저가를 경신했다. 한국ANKOR유전, 우진엔텍 등 원자력발전주도 신저가로 전락했다. 체코 신규 원전 수출 등 국정과제의 동력이 이번 사태로 상실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테마주로 분류되는 이스타코, 일성건설, 동신건설 등은 지난 6일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테마주인 토탈소프트도 같은 날 52주 신고가를 새로 썼다.
◆사흘간 1조 넘게 순매도한 외국인
당분간 증시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는 외국인의 움직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앞서 외국인 코스피 시장에서 지난 4∼6일 총 1조85억원을 순매도한 바 있다. 특히 금융업종에 매도세가 집중됐다. 4일 2551억원, 5일 2786억원, 6일 1759억원 등 모두 7096억원에 달했다. 올해 들어 은행이 중심인 금융업종 순매도가 이틀 연속 2000억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인들의 금융업종 지분율도 3일 37.19%에서 6일 36.12%로 1%포인트 넘게 낮아졌다. 같은 기간 금융업 다음으로는 보험업(-0.60%포인트), 철강·금속(-0.37%포인트), 증권(-0.26%포인트), 운수·창고(-0.22%포인트), 통신업(-0.16%포인트) 등 순으로 외국인 지분율이 하락했다. 은행과 더불어 보험과 증권 등 금융권 전체에 대한 투자 기피가 두드러진다.
4대 금융지주의 외국인 지분율도 줄었다. 3∼6일 기준 KB금융은 78.14%에서 77.19%로, 신한금융은 61.09%에서 60.62%로, 하나금융은 68.29%에서 68.14%, 우리금융은 46.11%에서 45.84%로 각각 하락했다. 외국인 지분율이 가장 크게 감소한 KB금융은 사흘 동안 주가가 15.7%나 추락했다. 신한금융은 -9.0%, 하나금융은 -7.9%, 우리금융은 -5.9%를 각각 기록했다.
◆증시 약세 지속 우려 속 하단 지지 전망도
증권가에서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산재해 당분간 증시 약세가 지속할 것이라는 분석이 중론이다. 강달러 기조 역시 약세 전망에 한몫했다.
메리츠증권은 내년 1월 말까지는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2016년 박근혜 정권 퇴진 당시 사례를 보면 최초 언론 보도부터 퇴진까지 46일이 걸렸는데, 현재 날짜에 단순 대입하면 내년 1월18일을 전후해 상황이 진정될 것으로 분석된다고 전했다. 아울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내년 1월20일이라는 점까지 고려하면 앞으로 강달러 시기에 원화 절하폭이 다른 나라보다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그간 악재가 많이 반영된 만큼 코스피 하단은 지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아울러 외국인의 금융업종 투매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세계적인 투자은행(IB) JP모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 금융주의 단기적인 하락을 재진입 시점으로 판단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