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은 유엔(UN)이 정한 세계 인권의 날이자, 세계 동물권의 날이다. 동물이 인간과 동일한 보호를 받을 자격이 있는 생명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같은 날로 했다. 제주도는 멸종위기 국제보호종인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해 생태법인 제도 도입을 준비 중인데, 도입 후 달라지는 건 무엇일까.
‘생태법인’은 사람 외에 기업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것처럼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자연환경이나 동식물 등 비인간 존재에 법적 권리를 주는 제도다. 법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법인격’을 부여받은 기업이 국가·개인 등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하듯 동식물도 후견인 또는 대리인을 통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생태법인은 미국의 크리스토퍼 스톤 교수가 1972년 “나무와 강, 대양과 같은 자연은 그 자체로서 근본적인 법적 권리를 가진다”며 주장한 ‘자연의 권리’에서 나온 개념이다.
외국에서는 2010년대를 전후해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헌법이나 법률, 조례나 판례 등을 통해 동물 등 자연에 법인격을 주고 있다. 에콰도르는 2008년 헌법에 ‘자연의 권리’를 명문화했고 볼리비아는 ‘어머니의 대지법’을 2010년 제정했다. 아르헨티나 오랑우탄 ‘산드라’(2014년), 콜롬비아 ‘아트라토강’(2016년), 아마존 전체(2018년), 뉴질랜드 ‘왕거누이강’(2017년), 인도 ‘갠지스강’(2017년), 미국 ‘클래머스강’(2019년), 캐나다 ‘매그파이강’(2021년)에도 법인격이 부여됐다.
국내에서 동물이 ‘주체’가 된 소송을 제기하려는 시도가 앞서 몇 차례 있었다. 2004년 환경단체 등이 부산지법에 천성산 터널 착공금지 가처분을 신청하며 ‘도롱뇽’을 소송 당사자로 내세운 사례가 있다. 단체들은 도롱뇽이 터널 공사로 환경 이익을 침해받는 만큼 당사자 자격이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7년에는 충주 지역 환경단체들이 폐갱도와 습지에 사는 황금박쥐, 수달, 고니 등 동물 7종과 함께 충주시장을 상대로 ‘도로 공사 결정 처분을 무효로 해달라’는 취지의 행정소송을 냈다. 이듬해엔 군산 복합화력발전소 공사계획 인가의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 원고란에 어민들과 함께 검은머리물떼새가 등장했다.
2018년에는 설악산에 서식하는 산양 28마리를 원고로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막으려는 소송이 제기됐다. 이 소송을 주도한 동물권 연구 변호사단체 피앤알(PNR·People for Non-human Rights)은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추가로 설치하면 산양이 소음·진동으로 생존을 위협받게 된다며 산양을 원고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들 소송에서 법원은 동물의 원고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도롱뇽 소송’의 1·2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자연물에 불과한 도롱뇽이 사건을 수행할 당사자 능력이 없다”고 명시했다. 황금박쥐, 검은머리물떼새, 산양을 원고로 한 소송도 모두 같은 이유로 각하됐다.
생태법인 제도가 도입되면 이들 동물에 대해서도 원고 자격이 인정될 수 있다.
제주도는 ‘제주특별자치도설치 및 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하 제주특별법)을 연내 개정해 생태법인(Eco Legal Person)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올 8월 밝혔다. 제주특별법에 생태법인 제도가 반영된다면 국내 처음이다.
이는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도는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에 직접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안과 생태법인 창설 특례를 반영하는 안 등 2가지 중 하나를 제주특별법에 반영하도록 할 방침이다. 생태법인 창설 방안은 도지사가 도의회의 동의를 받아 특정 생물종이나 핵심 생태계를 지정하고 이를 생태법인으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2019년 남방큰돌고래를 적색목록상 ‘준위협종’(취약종의 전 단계)으로 분류해 보호하기로 했다. 남방큰돌고래는 인도양과 서태평양의 열대, 아열대 해역에 분포하는 중형 돌고래로 우리나라에는 현재 제주도 연안에만 100∼120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