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가 대통령 탄핵·내란 수사 정국으로 비화하며 국가가 혼돈 상태에 빠졌다. 국가 원로들은 결국 현행 헌법체제를 통해 정국을 안정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고 조언했다. 야권이 추진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이 여권의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보다는 낫다는 판단인 셈이다. 아울러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결과물로 개정된 현행 9차 개정 헌법에 기반한 ‘87년 체제’의 한계가 누적된 만큼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 개헌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여야 정치권 원로 모임은 10일 이번 사태 관련 성명을 발표하기로 했다.
19대 국회에서 의장을 지낸 정의화 전 의장은 9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어떻게 수습을 해야 국익에 가장 도움이 될 것인지가 가장 중요한데 국익에 도움이 되려면 우선 헌법에 따라야 하지 않겠느냐”며 “헌법에 따른 프로세스를 밟아 가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말했다. 국가의 최상위법인 헌법이 규정한 대로 예측 가능한 경로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 전 의장은 “지금 윤 대통령은 내란죄로 입건이 된 상태로 굉장히 심각한 상황인 데다 출국금지도 당했는데 대통령으로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며 “국회에서 탄핵이 통과되면 직무대행체제가 된다. 위상을 갖춘 직무대행이 생기는 것으로 그렇게 (정국 안정 과정을) 밟아가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정 전 의장은 다시 탄핵안이 상정될 경우에 여·야 의원은 헌법 46조 제2항의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에 따라 회의장에 들어가서 투표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7대 국회 김원기 전 의장도 통화에서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시점이 문제이지 오래갈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전날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사실상 섭정 체제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것을 두고 “야당 입장에선 그렇게 깔끔하지 않은 방식이고, 대통령의 빠른 퇴진을 요구할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 했다. 이어 김 전 의장은 “지금 대세는 정해졌고, 여당 쪽에서도 대통령의 조기 퇴진은 막을 수 없다고 보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그는 우원식 국회의장이 여야 회담을 제안한 데 대해선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타협해서 매듭을 빨리 짓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힘을 실어줬다.
국내 1호 헌법연구관으로 이명박정부에서 법제처장을 지냈던 이석연 전 처장은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수사와 탄핵이 동시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처장은 “지금은 윤 대통령을 구속하고 탄핵안을 통과시키는 것이 해법”이라면서 “국민이,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내란죄가 실행되고 있었다. 지금 상황이 헌법이 규정한 (계엄 발동 요건인) ‘군대를 동원해 안녕질서를 유지해야 한다’는 정도로 절박한 상황인가”라고 반문했다.
◆“‘정치’로 풀 수 있는 건 ‘정치’로”
박근혜정부 시절 사회부총리를 지낸 황우여 전 부총리는 “혼란을 넘어서는 방안으로 개헌은 일리가 있다”며 “대통령제가 너무 (국민을) 고생하게 하고 실망하게 해서 내각제도 검토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치’로 풀 수 있는 것은 ‘정치’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전 의장은 개헌 논의와 관련해 “탄핵 절차를 밟은 뒤에 정치지도자들이 모여 개헌 논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 동교동계 ‘맏형’이자 야권 원로인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과 여권 원로인 신영균 전 국민의힘 상임고문 주도로 지난해 발족한 여야 원로모임 ‘3월회’는 현 시국 상황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기로 했다. 권 이사장은 통화에서 “현재 시국이 어지럽고 대한민국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는데, 여권 원로들도 탄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