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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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노벨상, 그리고 숱한 이야기들 [박영순의 커피 언어]

한 국가의 커피 소비량이 그 구성원의 지적 활동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수 있을까? 2000년대 들어서 이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가 적잖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결과를 종합하면 커피 소비가 창의성, 혁신, 아이디어 교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여기에는 도파민 계통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는 카페인이 심리운동 자극제로 역할을 한다.

인도공과대학교 연구팀이 지난 9월 국제과학 및 연구저널(IJSR)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1인당 커피 소비’가 ‘인구 100만명당 노벨상 수상자’의 수를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예측할 수 있는 변수 중 하나이다. 논문이 검증한 다른 변수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지출 비율, 교육 성과(PISA 점수), 의회 내 여성 비율, 두뇌 유출(Brain Drain) 등이었다.

연구팀은 “커피 소비가 지적 활동과 생산성 증대 등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요인을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커피 소비가 (한 국가의) 창의적인 환경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험적으로 커피가 지성인들에게 긍정적 영향을 준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문학가들이 커피와 맺은 일화들이 유명하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으로 커피를 끊었다고 밝혔지만,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을 때 그를 거든 것이 커피였다. 한강은 “시차 때문에 너무 졸려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면서 “현실감이 없는 상태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상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한강은 또 폴란드 바르샤바에 머물 때, 번역가인 유스티나와 일주일에 한 번씩 커피를 마시는 것이 강연보다 즐거웠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 A Memoir of the Craft)’에서 “커피를 많이 마시면 불안과 수면이 너무 영향을 받아 엄청나게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면서도 “아침에 한두 잔 마시면서 문학에서 에스프레소를 찬양하는 것에 더 익숙해졌다”고 고백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소설 ‘파도(The Waves)’에서 “침묵이 얼마나 더 낫겠는가. 커피잔, 테이블. (…) 내가 여기 영원히 맨몸의 물건들과 함께 앉아 있게 해줘. 이 커피잔…”이라고 서술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해변의 카프카’에는 커피에 대한 언급이 72번 나온다. 하루키는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라는 긴 제목의 소설에서 커피향을 ‘밤과 낮을 가르는 향’이라고 묘사했다. 커피는 작가에게 영감을 주는 묘약인 동시에 그 자체로 소설의 오브제였다.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찰스 부코스키는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은 경험에 또 다른 차원을 더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당신의 기록, 당신의 책, 우리의 아침 커피를 기억할 것입니다”라고 ‘로 위드 러브(Raw With Love)’에 쓴 대목은 연인들이 애송하는 시 구절이다.

일상에서 커피는 비용과 노력을 그리 많이 들이지 않고도 공감에 닿을 수 있게 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무라카미 류는 소설 ‘쇼와 시대의 인기곡들(Popular Hits of the Showa Era)’에 커피와 관련한 인간의 본성을 엿볼 수 있는 서술을 남겼다. “… 딱히 할 일이 없어서, 커피숍으로 느릿느릿 걸어가 서로 마주 앉아 몇 시간 동안 시간을 보냈다. 둘 다 별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상대방이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라는 일반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커피는 단어 자체로 무수한 이야기를 만든다. 커피가 우리를 사유로 이끄는 까닭이겠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