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하원의원 조기 총선거가 2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우크라이나에 타우러스 미사일을 제공할 것인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거듭된 요청에도 ‘타우러스 인도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총선 승리가 유력시되는 제1야당 대표는 “집권 시 타우러스를 우크라이나에 내줄 것”이라고 말했다.
9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독일 기독민주당(CDU)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가 이날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방문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났다. CDU는 자매 정당인 기독사회당(CSU)과 합쳐 독일 하원 제1야당에 해당한다. CDU/CSU 연합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숄츠 총리의 사회민주당(SPD)보다 지지율이 월등히 높아 총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점쳐진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메르츠 대표에게 독일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을 적극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우리는 독일의 더 강력하고 결정적인 조치를 고대하고 있다”는 말로 타우러스 미사일 제공을 호소했다.
타우러스는 독일 방산업체가 만든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이다. 500㎞ 이상의 긴 사거리와 높은 정확도를 자랑한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군 지하 벙커도 파괴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이에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3년 5월부터 끈질기게 타우러스 제공을 요구해왔으나, 숄츠 총리는 부정적 답변으로 일관해왔다. 이를 두고 CDU/CSU 연합과 자유민주당(FDP) 등 보수 성향의 야당들은 “숄츠 정부가 지나치게 러시아 눈치를 본다”고 비판하는 중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6월 기자회견에서 “만약 러시아 영토에 있는 그 어떤 목표물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 독일에 의해 우크라이나 측에 인도된다면 이는 러시아·독일 양국 관계를 영구히 파멸시킬 것”이라고 독일을 협박한 바 있다. 숄츠 총리는 푸틴의 말대로 독일·러시아 관계가 완전히 파탄이 나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메르츠 대표는 숄츠 총리의 입장, 그러니까 현 독일 정부의 공식 입장을 완전히 부정했다. 그는 “젤렌스키 대통령은 타우러스 미사일에 대한 우리 당의 기존 방침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2024년 12월 초 지금도 예전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타우러스를 인도해야 한다는 CDU/CSU 연합의 당론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실 독일 유권자들 사이에는 확전을 염려해 타우러스 미사일의 우크라이나 제공에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는 이가 많다. 그런데 메르츠 대표는 “전쟁을 빨리 끝내려면 우크라이나가 더 강력한 무기를 가져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한다. 이날 폴란드에서 기차를 타고 키이우로 이동하기 전 그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서 “전쟁은 가능한 한 빨리 종식되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어야만 푸틴은 협상에 뛰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이 ‘무력에 의한 우크라이나 점령은 불가능하다’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는 한 전쟁은 계속될 것이란 뜻이다.
독일은 SDP·녹색당·FDP 3당 연정에서 지난 11월 FDP가 탈퇴하며 내각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이에 숄츠 총리는 원래 2025년 9월로 예정됐던 총선을 2월로 앞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