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2019년 제2차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시드니 사일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지난달 25일(현지시간) 워싱턴의 한 카페에서 세계일보와 만나 이같이 강조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생일 축하 인사나 8·15 광복절을 축하하는 의례적인 소통은 할 수 있지만, 이른바 북한의 ‘스몰 딜’을 받아들이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는 “북한이 미 본토를 사정권으로 삼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면 트럼프가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할 수 있다는 데 대해 한국인들이 우려하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이는 너무 나간 얘기”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타고난 협상가이고, 한국 대통령과 잘 지내는 것보다 김 위원장의 러브레터에 화답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지는 않다”는 얘기다.
사일러 고문은 1982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냉전의 정점에서 한반도와 인연을 맺은 그는 1987년 한국을 떠났다가 1989년 한국에 돌아와 ‘전환’을 목격했다. 하지만 1993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이후 그와 한반도의 인연의 역사는 북한 핵개발의 역사이기도 하다.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6자회담 차석대표로 수차례 북·미 대화에 참석했고, 트럼프 당선인의 1기 행정부인 2016∼2020년에는 주한미군 선임분석관으로 일하며 북한의 핵개발을 지켜봤다. 이 기간 그가 얻은 북한이 비핵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깨달음은 대북 분석·협상가로서 그의 커리어에는 다소 힘이 빠질 수 있는 결론이지만, 그는 “비핵화 외교의 영역 내에서 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일들이 있었다”고 회고했다. 다음은 사일러 선임고문과의 일문일답.
―40년의 커리어가 곧 한반도 핵문제의 역사다.
“그간 북한 핵문제에는 늘 ‘업 앤드 다운’(up and down)이 있었다. 대화가 있은 뒤 북한은 핵실험을 했고, 다시 또 대화의 국면이 찾아왔다. 하지만 조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 우리는 ‘업’을 보지 못했다. 따라서 이제 질문은, 왜 북한이 우리에게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느냐가 될 것이다.”
―북한은 왜 대화하지 않으려 할까.
“이론적 기초는 2021년 8차 당대회를 통해 정면돌파전을 선언한 때로부터 이미 이뤄졌다. 이른바 ‘내핍을 견디는 고립주의’(austerity isolation)이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왔다. 북한의 외교적 고립 중 어느 만큼이 코로나 때문이고, 어느 만큼이 2019년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북·미 대화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인지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이후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로의 교체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미국이나 한국과의 대화는 가치가 없을 것으로 봤을 것이다. 게다가 현재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혜택을 보고 있는 북한은 대화할 동기가 더 적다.”
―트럼프가 돌아왔으니 북한과 미국은 대화할까.
“트럼프 당선인은 아마 (김 위원장의) 전화를 받고 생일 축하 인사를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8·15 광복절을 축하하는 그런 종류의 소통을 할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제3국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는 데 동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하노이 회담으로부터 (북한의 스몰딜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많은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놀라운 지원이나 위험한 지원을 시도하는 경향이 적은 사람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과 의미 있는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란 얘기인가.
“북한이 미 본토를 사정권으로 삼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하면 트럼프가 한국에서 군대를 철수할 수 있다는 데 대해 한국인들이 우려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는 너무 나간 얘기다. 그럴 경우 동아시아는 매우 불안정해진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 거래가 치러야 할 높은 비용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타고난 협상가이고, 한국 대통령과 잘 지내는 것보다 김 위원장의 러브레터에 화답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지는 않다.”
―한국에서는 ‘코리아 패싱‘을 우려하고 있다.
“남북대화, 북한인권, 일본인 납북자, 북한 비핵화 문제는 필연적으로 연결될 수 밖에 없는 이슈들이다. 하나의 이슈에서 북한의 진정성을 보게 된다면 네 가지 모두에서 진전을 보게 될 것이며 모두 북한의 전략적 결정이 필요하다. (시차는 좀 있더라도) 미국의 고위 당국자들이 한국 당국자들에게 브리핑을 하면 한국의 당국자들은 이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40년간 무엇을 배웠나.
“북한은 스스로 비핵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 누구하고도 더 나은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둘과의 더 나은 관계는 김정은 체제의 생존에 실존적 위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협상의 실패는 거의 예측 가능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비핵화 협상은 필요 없는 것인가.
“그렇진 않다. 비핵화 외교의 영역 내에서 할 수 있는 다른 많은 일들이 있다. 비핵화 이전에도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에서 내가 관여한 대북 비밀회담의 대담한 조치들은 단계적(step by step) 접근을 취했으며 일부 군비 통제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협상이 진행되면) 북한 핵프로그램이 성장하는 속도를 줄일 수 있다. 우리는 이 같은 방식으로 북한과의 대화의 문을 열어 둘 수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제공하는 지원은 어떤 것일까. ICBM 정각 발사 등 높은 수준의 기술 지원을 할까.
“꼭 고도의 기술을 제공하는 것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냉전 이후 북한이 군사 장비를 중국이나 소련(러시아)에 의존할 수 없게 된 이후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은 점점 악화됐다. 1990년 이후 우리가 북한의 핵개발을 그렇게까지 우려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이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알고 전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러시아가 북한 군수 산업의 현대화에 도움을 준다면 북한 위협은 잠재적으로 치명적으로 바뀔 수 있다. 다만 이것이 한반도의 힘의 균형에 결정적인 변화는 아닐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번에는 주한미군을 줄이려 할까.
“그는 검토할 것이다. 현재 연방 정부 모든 규모를 조사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며 그중 일부는 우리 군대가 배치된 곳에서 우리의 전력을 조사하는 것이 될 것이다.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과거 주한미군의 역사를 보면 조정이 있었다. 현재 수준을 살펴보고 적절한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 지금 고려돼야 할 것은 향후 5∼10년 내에 중국과 전쟁을 치르거나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 행동이 있을 가능성, 그런 시나리오에서 주한미군의 역할이다.”
―대만해협에 전쟁이 있을 경우 한국이 개입될 것이라는 의미인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북한이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것이며 우리는 북한을 억제할 준비가 돼야 한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의 역할이 논의되지 않는 대만해협 시나리오는 없다. 그렇다고 한국 군인들에게 대만에 가서 싸우자고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주한미군 규모 축소는 중국에 이 지역에서 미국의 헌신 감소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트럼프 당선인과 그 지지자들에게는 방위비 재협상 논의가 우리가 왜 그곳(한국)에 있는지에 대한 성숙한 대화를 나눌 기회가 될 것이다.”
―새로운 외교안보 라인은 한반도 문제를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는가.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지명자는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외교위에 상정된 문제의 역학 관계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그를 지원할 실무진이 많이 있을 것이다. 알렉스 웡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부보좌관 지명자의 경우 북한뿐 아니라 한국도 잘 안다. 한국 언론이 웡 부보좌관 지명자의 대북 협상 경력에 주목하는 것은 다소 편향됐다. 이는 그의 오랜 경력의 일부에 불과하며 트럼프 당선인이 북한과 대화를 준비하기 위해 그를 고용한 것은 아닐 것 같다.”
시드니 사일러 CSIS 선임고문은…
●중앙정보국(CIA) 선임분석관 ●백악관 한반도 담당 보좌관 ●6자회담 미측 차석대표 ●주한미군 정보분석담당관 ●미국 국가정보국장실(ODNI) 선임 북한 담당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