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이 윤석열 대통령을 사실상 이번 사태의 ‘내란 수괴(우두머리)’로 겨냥하고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이번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윤 대통령과 비상계엄을 모의한 경위 등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인 뒤, 빠른 시일 내에 윤 대통령을 상대로 한 조사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고검장)는 전날 청구한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에 ‘윤 대통령과 공모해 국헌 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다’는 내용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러면서 김 전 장관에게 형법상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 혐의를 적용했다. 형법은 내란죄를 저지른 사람을 ‘우두머리’,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그 밖의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는 ‘부화수행(附和隨行)’으로 구분해 처벌한다. 포고령을 직접 작성하고 군 지휘관들에게 병력 투입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김 전 장관을 우두머리가 아닌 종사자로 판단한 만큼 검찰은 사실상 윤 대통령을 내란 수괴로 보고 수사를 벌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검찰은 김 전 장관과 그의 구속영장에 적시된 공범들에 대한 수사를 통해 윤 대통령의 내란 수괴 혐의를 규명해나갈 전망이다. 이날 국회에서 이 사건 상설특검안이 통과된 만큼, 검찰이 상설특검 가동 전 수사 속도를 높여 윤 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까지 진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김홍일 전 방송통신위원장,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 등을 맡았던 최지우 변호사에게 접촉하는 등 변호인단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 변호사는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수임 등에 대해 정해진 바 없고 (윤 대통령 측에서) 의견 타진만 한 정도”라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이 의혹의 ‘정점’인 만큼 조사 시기는 김 전 장관과 하급자들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뒤가 될 전망이다. 익명의 한 변호사는 “실행한 군인부터 시작해 김 전 장관, 다른 국무위원과 국무총리까지 조사해 틀을 짠 후 윤 대통령을 불러 조사한 것들이 맞느냐 틀리느냐 얘기를 들어야 한다”며 “2~3주는 지나야 윤 대통령을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검찰은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육군참모총장),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 등을 공범으로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현역 군인으로는 처음으로 여 전 사령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계엄 체제에서 계엄사 산하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을 예정이었던 여 전 사령관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김대우 방첩사 수사단장(해군 준장) 등에게 우원식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등 주요 인사들에 대한 위치 추적을 요청하거나 체포·구금 지시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검찰은 앞서 지난 8∼9일에는 박 전 총장과 곽 전 사령관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먼저 조사했다.
김 전 장관은 이날 오후 3시 서울중앙지법 남천규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심리로 진행된 영장심사를 포기했다. 김 전 장관은 이날 오전 입장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께 큰 불안과 불편을 끼쳐드린 점, 깊이 사죄드린다”면서 “이번 사태와 관련한 모든 책임은 오직 저에게 있다. 부하 장병들은 저의 명령과 주어진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는 법원에 구속심사를 위한 의견서도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오후 3시5분쯤 열린 심문에는 검찰 측만 참석해 김 전 장관 구속 사유에 대해 20분간 의견을 진술했다.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동시 수사를 벌이며 벌어진 ‘중복 수사’ 문제는 이날도 빚어졌다. 공수처는 이날 심문을 30분 앞둔 오후 2시30분쯤 검찰과 동일하게 내란 중요임무 종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같은 피의자에 대해 검찰과 공수처가 중복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구속영장 기각 시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예비적 청구를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전 세 차례의 고강도 조사를 벌인 검찰과 달리 공수처는 김 전 장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한 차례도 진행한 바 없어 논란이 예상된다.
향후 비상계엄 사태 관련 내란 혐의 등 진상규명을 위한 상설특검이 가동되면 특검은 각 수사 기관에서 인력을 파견받아 특검이 수사를 맡게 된다.
국방부는 이날 문상호 국군정보사령관(육군 소장)에 대한 직무정지를 단행했다. 직무정지된 문 사령관은 분리 파견됐으며, 조사 여건 등을 고려해 수도권에 위치한 부대로 대기 조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