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협상 없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4조1000억원 규모의 감액 예산안이 통과됐지만 예산 정국은 내년 초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민주당이 예산안에 담지 못한 각종 증액 사업을 내년 초 정부 추가경정예산안(추경안)에 담겠다고 밝히면서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나 하야가 조속히 이뤄지지 않고 ‘질서 있는 퇴진’ 상태가 이어질 경우 추경안 처리에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추경안 등 예산안 편성 요건에 ‘대통령 승인’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가결이 재정 정책의 혼란을 막을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지적한다.
10일 국회에 따르면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감액 예산안 통과 방침을 밝히며 “민생과 경제 회복을 위해 증액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추후 추경 등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단 감액 예산안을 통과시켜 불확실성을 해소한 뒤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사업 등 증액 사업을 담아 이른 시일 내에 추경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내년도 예산안이 통과된 뒤 “민생 경제회복 위해 증액이 필요한 부분은 추경으로 확충돼야 한다”면서 “증액되지 못함으로써 국민이 피해입지 않고 경제적 약자와 취약계층이 희망을 품게 해야 한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 집행 시작 즉시, 추경 준비에 착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추경안은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발행할 우려가 있는 경우 편성할 수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여파로 감액 예산안이 통과된 데다 내년 성장률이 1%대로 하락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을 감안하면 추경안 추진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추경 편성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다. 현 상황이 국가재정법상 요건에 맞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절차상 추경안 편성에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추경안 등 예산안은 기재부 장관이 편성해 국무회의 심의를 거친 후 대통령 승인을 얻어야 한다. 탄핵이 지지부진한 상태가 지속되고, 하야도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결국 윤 대통령이 ‘승인’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경우 사실상 권한이 없는 윤 대통령이 국정에 적극 개입하는 꼴이 돼 정치적으로 혼란이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재정 정책 측면에서도 대통령 탄핵이든 하야든 결정이 돼야 한다”면서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질서 있는 퇴진과 같은 상태는 더 혼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