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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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한국어’ 호명 막판 불발된 이유는…“마지막까지 연습했지만”

박옥경 번역가 “한국어 발음 워낙 생소해 그런 듯”
연회장서 스웨덴 대학생 사회자가 한국어 깜짝 소개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에서 열린 노벨상 연회에 참석하고 있다. 스톡홀름(스웨덴)=뉴스1

 

한국어로 호명 예정이었던 한강의 노벨문학상 시상식 멘트가 막판에 영어로 바뀌었다. 자칫 어색한 한국어 발음으로 시상식의 집중력과 무게감이 흐트러질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10일(현지 시각) 오후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서 문학상 시상자로 나선 스웨덴 한림원 종신위원 엘렌 맛손은 한강의 수상 차례가 되자, 영어로 “디어(Dear) 한강”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영어로 “스웨덴 한림원을 대표해 따뜻한 축하를 전할 수 있어 영광”이라며 “국왕 폐하로부터 상을 받기 위해 나와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맛손은 당초 한림원 연설문을 스웨덴어로 먼저 낭독한 뒤 마지막 두 문장은 한국어로 호명할 예정이었으나, 최종 준비 단계에서 영어로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어 번역 의뢰를 받은 박옥경 번역가는 “시상식을 며칠 앞두고 (맛손 측에서) 도저히 어려울 것 같아서 결국 영어로 하기로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연합뉴스에 전했다. 이어 “처음에는 한국어로 하겠다며 마지막 한 줄을 번역해달라고 부탁해 왔다”며 “번역 문장을 보냈더니 ‘장담은 아직 못 하겠으나 한 줄 더 번역해 달라’고 추가로 요청이 왔었다”고 덧붙였다.

 

이후 박 번역가와 스웨덴 국적인 남편 안데르스 칼손 영국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SOAS) 한국학 교수가 직접 한국어로 된 문장을 각각 녹음해 전달했다고 한다. 이들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와 ‘흰’을 스웨덴어로 공동 번역했다.

한강이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2024 노벨상 시상식에서 스웨덴 칼 16세 구스타프 국왕으로부터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있다. 스톡홀름(스웨덴)=뉴스1

 

박 번역가는 “한림원이 스웨덴어 발전을 추구하는 기관이라 연설문은 전통대로 스웨덴어로 낭독하지만, 마지막에 호명할 때는 수상자 출신국 모국어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간은 대부분 서양 언어권이었다”며 “(맛손 위원이 한국어를) 마지막까지 연습했지만, 워낙 (발음이) 생소해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노벨상 시상식에서 수상자의 모국어 호명은 국적 등을 고려해 매해 다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2022년 프랑스 여성 작가 아니 에르노와 2019년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 수상 당시엔 마지막 문장 전체를 각각 프랑스어와 독일어로 호명했다. 2006년 튀르키예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 수상 당시에도 시상자가 마지막 문장 전체를 튀르키예어로 말했다. 반면 2012년 중국 소설가 모옌의 수상 땐 스웨덴어로 연설문 전체를 낭독한 뒤 마지막 그의 이름을 부를 때만 중국어로 “모옌 칭(請·청하다)”이라고 말했다.

 

한국어 호명은 무산됐지만 한강은 이날 아시아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전 세계에 한국 문학의 위상을 알렸다. 이날 한강은 검은색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채 등장했다. 다른 수상자들과 함께 입장해 시상식장 무대 중앙 왼편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수상자들이 입장하자 스웨덴 국왕과 실비아 왕비 등 참석자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최고의 경의를 표시한다는 의미다.

 

다만 시상식 후 연회장에서는 깜짝 한국어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소설가 한강의 수상 소감 차례를 소개하던 스웨덴 대학생 사회자는 한국어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소개하게 돼 영광”이라며 한강의 이름을 불렀다. 언론에 사전 배포된 프로그램 큐시트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한강은 해당 연회에서 “문학작품을 읽고 쓰는 일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하는 일”이라며 “가장 어두운 밤에도 언어는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묻고, 언어는 이 행성에 사는 사람의 관점에서 상상하기를 고집하며,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김수연 기자 sooy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