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인격말살에 이르는 가혹 행위를 일삼았던 동창생을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10대 측이 항소심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형사1부(부장판사 민지현)는 살인 혐의를 받은 A군(19)의 항소심 첫 공판을 열었다. 이날 A군 측 변호인은 “당시 상황은 피고인이 죽어야 끝나는 상황이었다”며 피해자 B군(19)의 가혹 행위가 극심했던 점을 언급했다.
A군은 지난 4월14일 오전 2시30분쯤 중학교 동창생 B군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아 재판에 넘겨졌다. B군은 평소 길에서 우연히 A군을 만나면 아무 이유 없이 폭행하고 괴롭힘을 일삼던 ‘학교폭력 가해자’였다.
사건 발생 약 3시간 전인 13일 오후 11시40분쯤, B군과 C군(19)은 강원 삼척시에 위치한 A군의 아파트로 찾아왔다. 이들은 A군의 머리카락을 강제로 자르고, 라이터를 사용해 얼굴 부위에 상해를 입히는 등 약 3시간 동안 괴롭힘을 가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B군은 A군이 옷을 벗게 한 뒤 자위행위를 시키고 스스로 신체를 학대하는 행위를 하라고 강요했고, 강제로 술을 먹이기까지 했다. 결국 A군은 옆방에 물건을 가지러 가게 된 틈을 타 주방에 있던 흉기로 B군을 찔러 살해했다.
1심 재판부는 A군에게 징역 장기 5년에 단기 3년을 선고했다. 피해자 유족으로부터 용서받지 못한 점과 사건 당시 3시간 폭력과 가혹 행위를 당한 점 등을 참작했다. 이후 이 사건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지고, 새 변호인들이 무료 변론에 나섰다.
변호인 측은 A군의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당시 A군이 3시간 가까이 가혹 행위를 당했던 상황. 이들은 “중증 지적장애로 인한 정신과 처방 약을 복용 중인 상태에서 강제로 소주 2병을 주입 당한 상태에서 우발적으로 범행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1심은 A군이 사건 경위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기억한 점을 근거로 심신상실 또는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심신상실은 아니더라도 심신미약에는 해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변호인들은 “A군으로서는 그 자리에서 죽느냐, 이 자리에서 재판받느냐 하는 선택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라며 “최소한 형 면제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A군의 ‘살인 고의성’도 인정할 수 없다고 전했다. 수사기관에서 A군은 ‘살해할 고의를 가지고 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으나 조사를 거듭하면서 주장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 근거였다.
A군이 수사부터 1심까지 기존 변호인의 조력을 거의 받지 못한 점도 문제 삼았다. 실제로 피고인 최초 구속 이후, 보호자가 사선 변호사를 선임했음에도 그 변호사는 A군을 접견하거나 법정에 출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복대리인(법률 대리인이 위임한 대리인으로 보이는 변호사) 역시 법정에 출석하고도 서면 자료 하나 제출하지 않기도 했다. 이에 “A군이 실질적으로 수사와 재판에 조력 받을 헌법상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또 해당 사건의 경우, 형사사건으로 ‘소송대리’가 아닌 ‘변호인’ 개념이기에 복대리가 불가능함에도 검찰과 재판부는 이를 간과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오는 1월15일 재판을 한 차례 더 열어 심리를 이어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