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대한민국. 경주시. 석굴암을 간다.
마음이 뒤틀리어 빈곤해질 때. 헛헛하게 가라앉아 나 자신이 허무해질 때. 그럴 때 토함산 숲길을 1시간 단단히 걸어가 석굴암 본존불을 바라본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채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석굴암에는. 본존불에는. 인간을 어루만져 주는 ‘마음의 힘’이 있다. 글과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사진·동영상도 그려내지 못한다. 실물을 보아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문화’의 정점이다.
석굴암을 만든 때는 8세기 중엽. 통일신라 경덕왕 때다. 신라의 전성기였다. 그런데 경덕왕이 죽은 뒤 신라는 난세로 접어든다. 정치는 패싸움으로 전락했고, 귀족은 품위 대신 분열했으며, 평민들은 반란을 꿈꾸기 시작한다. 결국 후삼국 시대가 열렸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역사상 이런 현상은 매우 흔하여 그것이 문화사의 한 법칙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고 적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그의 언급처럼 ‘문화’의 정점 뒤에 정치의 혼란이 왔다고 증언한다.
신라의 뒤를 이은 고려. 당시 최고의 예술작품을 꼽자면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반드시 들어간다. 한때 인천공항 앞 광고판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대표 유물이 이 상감청자였다. 청자가 만들어진 때는 12세기로 추정된다. 드라마 ‘무인시대’가 그렸던 ‘난세가 열린 때’다. 역사는 이때를 배신과 시기, 질투와 협잡이 난무하고 ‘죽음이 춤을 추었다’고 빼곡히 기록했다.
조선왕조 문화의 최정점은 영·정조 때다. 정선, 김홍도. 그리고 신윤복의 그림이 이때 나왔다. 정조는 “아름다움이 적을 이긴다”는 모토로 수원 화성을 지었다. 그리고 이후 조선왕조는 기나긴 정치적 혼란 끝에 일제강점기를 맞이한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봉준호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타는 것을 보았고 방탄소년단(BTS)이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을 석권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작가 한강은 한글로 노벨문학상을 받아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윤석열 대통령이 저지른 짓과 그에 따른 정치적 혼란도 목도하고 있다. 그 이면에는 현 정치인들의 무능이 자리 잡았다.
‘석굴암’이, ‘상감청자’가, ‘수원 화성’이 반복되는 걸까. ‘12·3 비상계엄’ 때 나는 그런 생각을 문득 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앞 카페에 시위대를 위한 이름 없는 시민들이 ‘선결제’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시위대가 국회 앞 거리를 깨끗이 청소한다고 들었을 때. 다시 탄핵을 위해 국민이 거리로 나온다는 소식을 보았을 때. 그리고 한 작가가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언어는 우리를 서로 연결한다”고 말했을 때. 나는 대한민국의 힘을 느꼈다. 정확히는 ‘국민의 힘’을. 적어도 지금은 역사가 반복될 때는 아닌 것 같다.
올해 석굴암은 곧 친구들과 찾기로 했다. 석굴암에서 나는 속으로 말하기로 했다. “반복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또 말할 것이다.
“국민이 그렇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