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사, 한 걸음 더/ 한국여성사학회/ 푸른역사/ 2만8900원
여성사학회 모임인 한국여성사학회가 창립 2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학회’ 이름으로 여성사에 대해 다룬 책을 내놨다.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를 망라한 여성사 연구자 46명의 글이 담긴 이 책을 통해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여성사 연구의 현주소와 여성사 연구자들의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시간적으로는 고대에서 현대까지, 공간적으로는 동서양을 넘나들기에 여성이 주체인 역사이지만 단순히 여성들이 쑥덕공론하는 ‘규방역사’의 범주를 넘어선다. 책은 가부장제와 가족이라는 전통주제는 물론이고, 여성사와 동물사를 연결지어 종차(동일한 개념에 포함된 한 종류가 다른 종류와 구별되는 요소)를 넘는 정의를 모색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 한국전쟁 이후의 양장점 성업을 분석하며 젠더경제사(성별과 관련된 경제사)를 파고들기도 한다.
예컨대 19세기 말 영국의 탈코르셋 운동과 여성의 자전거 타기를 다루면서 “여성은 자전거를 탈 때 몸이 편할지 마음이 편할지를 결정해야 하는 딜레마에 처한 셈이었다”(85쪽)고 갈파하거나 조선의 양반 여성들이 소송할 때 요즘으로 치면 변호사라 할 외지부를 활용했다(359쪽)고 언급한다.
그러면서도 마냥 근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200자 원고지 150매 분량의 논문 쓰기에 익숙한 필자들이 30매짜리 글을 쓰면서 각주를 없애고, 소제목을 넉넉히 붙이는 등 독자를 위한 배려를 놓치지 않는다. 2018년 선보였던 ‘한국사, 한 걸음 더’처럼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친절한 글쓰기’를 시도했기에 진지한 글들이지만 의외로 잘 읽힌다.
여기에 18세기 영국에서 흔히 보던 ‘아내 팔기’ 풍습의 원래 의도(141쪽)라든가 1927년 잠사업계 취업생 훈련소인 강원 춘천의 전습소에서 여학생을 술판 접대에 동원한 사건을 계기로 벌어진 ‘개혁파’ 여학생들의 동맹휴학운동 등 눈길을 끄는 역사적 사건·사고·사실도 다룬다.
또한 여성사 학계의 현주소만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제기되는 이론화의 필요성 등 동료 연구자나 후학들을 위한 방향 제시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젠더사는 민속학적 탐구 영역이나 일상사적인 관심을 넘어 맥락을 고려하는 연구로 나가야 한다. 특히 다양성의 시대가 만들어 내는 맥락맹(context-blind)의 위험성을 고려해야 하고, 그래야만 여성사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 즉 젠더사의 이론화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