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대사를 역임한 어느 전직 외교관의 회고록에 나오는 일화다. 그가 1980년대 주미 대사관에서 참사관으로 일하던 시절 대학 입시를 앞둔 아들이 어느 외국 잡지에 실린 기사를 보고서 문의했다. 기사는 세계 각국의 명문대를 소개하며 한국의 경우 육군사관학교,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순으로 소개했다. “육사가 한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냐”는 아들의 물음에 그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대통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3명을 배출한 학교이니 외국인이 보기에는 육사가 한국 최고의 명문이었을 것이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하기까지 군부 정권이 이어지는 동안 육사는 명실상부한 엘리트의 산실이었다.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회의장, 감사원장, 장차관, 국회의원 등 수많은 고위직 인사를 배출했다. 군사정권을 논하며 ‘하나회’를 빼놓을 수 없다 전두환, 노태우 등 육사 11기 생도 일부가 주축이 돼 만든 하나회는 후배들 가운데 기수별로 극소수 인원만 가입시키며 일종의 사조직으로 변질했다. 전두환의 5공화국과 노태우의 6공화국 당시 국방부 장관, 육군참모총장 등 요직은 하나회 출신이 도맡아 차지했다. 국군보안사령부(현 방첩사), 육군수도경비사령부(현 수방사), 육군특수전사령부 같은 핵심 부대 사령관도 마찬가지였다.
그 시절 ‘육법당’(陸法黨)이란 말이 생겨났다. 5공화국을 출범시킨 전두환이 통치를 뒷받침할 집권 여당으로 만든 민정당을 그렇게 불렀다. 육사를 졸업한 전직 군인과 서울대 법대를 나온 법조인 및 행정 관료 출신이 당을 장악했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한마디로 정권의 주인은 군인들이고, 그 밑에서 실무를 챙기는 일을 법률가와 관료들이 했다. 노태우 정권 때에도 지속된 육법당의 지배는 문민정부가 등장하며 비로소 끝났다. 군 출신 인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는 법조인과 관료, 거기에 더해 과거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인물들로 빠르게 채워졌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주도한 이들의 출신 학교가 새삼 눈길을 끈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서울대 법대를 나오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법률가 출신이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 곽종섭 전 특전사령관 등은 모두 육사 졸업생이다. 이들을 신(新)육법당으로 규정해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다. 군사정권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법조인들이 주인이고 군인들은 그 명령에 따르는 실무자였다는 점이다. 계엄령 하에 국회를 무력화하고 야권 인사들을 체포하려던 시도가 완전한 실패로 돌아간 지금 육법당의 몰락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정권 출범 후 불과 2년 7개월 만이니 참 빠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