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가 시리아에 식량을 제공키로 해 눈길을 끈다. 시리아는 최근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 전 대통령이 실각하고 반군이 정권을 장악한 뒤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는 그간 러시아의 맹방이던 시리아가 국제사회의 반(反)러시아 진영에 가담해 자국을 도와주길 간절히 원하는 모습이다.
14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내각에 “국제기구 및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해 시리아에 식량을 보낼 수 있는 공급 메커니즘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젤렌스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선 “우리는 ‘우크라이나산 곡물’(Grain from Ukraine)이란 이름이 붙은 인도주의 프로그램을 통해 시리아가 식량난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는 유럽 최대의 비옥한 평야 지대를 가진 국가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략으로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세계에서 식량을 가장 많이 수출하는 나라들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중동 국가들이 주로 우크라이나에서 밀과 옥수수를 수입해왔다. 전쟁 발발로 곡물 재배에 차질이 빚어지긴 했으나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자국민의 소비량을 훨씬 넘어서는 식량을 생산하고 있다. 한때 러시아 해군이 흑해를 사실상 봉쇄하며 수출 길이 막히기도 했으나, 이후 유엔 등 국제기구와 이웃나라 튀르키예 등이 중재에 나선 끝에 남부 항구도시 오데사를 통한 곡물 수출이 재개됐다.
시리아는 다른 중동 국가들과 달리 그간 우크라이나에서 식량을 수입하지 않았다. 대신 러시아가 수출하는 밀에 크게 의존해왔다. 이는 아사드 정권의 친(親)러시아 정책과 무관치 않다. 러시아는 시리아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고 자국 군대를 주둔시키며 아사드 정권이 반군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적극 지원했다.
문제는 최근 반군이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아사드 정권을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아사드와 그 가족은 시리아를 떠나 러시아로 향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아사드 일가의 망명을 허용했다.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완전히 손을 떼려는 움직임이 감지되는 가운데 지난 13일 러시아 및 시리아 언론은 일제히 “불안정한 정세 때문에 러시아에서 시리아로의 밀 공급이 전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아사드 정권이 몰락한 직후 우크라이나 외교부는 “우리는 시리아 국민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시리아 내 러시아군 주둔은 즉각 끝나야 한다”며 “향후 시리아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외교관계를 복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시리아 새 정부가 러시아와 관계를 단절하고 우크라이나 편에 서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드러내 셈이다.
실제로 아사드 집권 기간 시리아는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러시아와 푸틴 편을 들었다. 러시아가 전쟁으로 빼앗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을 자국 영토로 편입했을 때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국제법 위반”이라며 강력히 반대했지만 시리아는 적극 찬성했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시리아의 이 같은 처신이 가증스럽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