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혐의 조사를 두고 ‘수사기관 쇼핑’ 우려가 제기된다.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를 위해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앞다퉈 내란 사건 관계자 소환조사에 나서면서, 이들이 조사받을 곳을 선택해 출석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윤 대통령에 대한 피의자 조사는 탄핵소추안 의결로 가시권에 들어왔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같은 사건을 두고 수사기관들이 경쟁을 벌이면 피의자들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수사기관을 고르는 일종의 수사기관 쇼핑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사권의 경계가 모호한 상황에서 피의자가 특정 기관 소환에 응하는 방식으로 해당 기관에 ‘주도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이번 내란죄 수사 역시 관계자 진술을 먼저 확보하려는 수사기관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조사 일정이 겹치는 일이 생기고 있다. 앞서 곽종근 특수전사령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등은 하루 새 공수처와 검찰에 오가며 두 곳의 조사를 받았다. 두 사람 모두 오전에 공수처에서 짧은 조사를 받은 뒤 오후 검찰에 출석하면서 공수처 내부에서는 불쾌한 기류가 감지되기도 했다.
과거 수사기관들이 같은 사건을 ‘이중 수사’했던 대표적 사례는 김광준 전 검사 비리 사건을 들 수 있다. 2012년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은닉 자금을 추적하던 경찰이 김 전 검사의 비리 혐의를 포착해 수사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다음 날 검찰이 특임검사를 지명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뛰어들면서 양 수사기관의 수사 경쟁이 시작됐다.
양측은 독자 수사 노선을 걷겠다며 속도전을 벌였고, 급기야 김 전 검사를 비롯해 핵심 피의자들이 검찰과 경찰 양쪽 모두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는 상황이 벌어졌다. 김 전 검사에게 먼저 출석을 요구한 곳은 경찰이었지만, 김 전 검사가 조사에 응한 곳은 검찰이었다. 당시 변호인들이 김 전 검사에게 경찰보다는 자신이 몸담은 검찰에서 조사받을 것을 권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핵심 피의자 진술 확보에 실패한 경찰은 수사 주도권을 뺏길 수밖에 없었고, 사건은 2012년 12월 검찰이 김 전 검사를 10억원대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기소 하면서 일단락됐다. 이후 김 전 검사는 법원에서 징역 7년 형을 확정받았다.
이 사건은 윤 대통령과도 연관이 있다. 김 전 검사가 구속기소 된 뒤 경찰이 별도로 수사해온 혐의로 김 전 검사를 검찰에 송치하자 2013년 2월 “이미 특임검사팀에서 기소한 사건”이라며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린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 바로 윤 대통령이었다.
내란죄 수사 주체를 두고 교통정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윤 대통령 역시 12년 전 김 전 검사 사례처럼 조사받을 곳을 스스로 선택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윤 대통령으로선 자신의 혐의를 벗기 위해 친정인 검찰에서 조사받기를 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김 전 검사가 검찰을 선택했다가 결국 중형을 확정받은 사례 등을 고려해 윤 대통령이 재판 유불리를 따져 공수처 등 다른 수사기관을 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도 있다.
수사기관들의 조사 요구에 아예 불응할 가능성도 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2일 담화에서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면서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법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수사기관들은 윤 대통령이 정당한 사유 없이 소환에 불응한다고 판단할 경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강제 신병 확보에 나설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