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정부가 추진해 온 4대 개혁(의료·연금·노동·교육개혁) 완수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의료계가 ‘의료개혁을 원점 재검토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의정 갈등의 향배는 더 가늠하기 어려워졌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의료계는 여전히 ‘의대 증원 정책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전날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즉시 “2025년 의대 신입생 모집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며 의대 증원을 원점으로 되돌리라는 입장문을 냈다. 탄핵당한 정권이 추진하던 정책인 만큼 당장 무효화해야 한단 주장이다.
2025학년도 입시는 수시 합격자가 발표되고 있는 등 이미 상당수 진행돼 손을 대기 어려워졌지만, 이번 탄핵소추안 가결로 2026학년도 대입은 원점재검토될 가능성도 커졌다.
의정 대화는 성사되기 더 어려워졌다. 의료계와 협상할 정부 측 대표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고 있다. 만약 의정 대화가 성사된다 하더라도 권한대행 체제에서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일 수 있을지 미지수다. 내년 초 새롭게 꾸려지는 의협 지도부가 어떤 기조를 취할지도 변수다.
탄핵 사태 전부터 지지부진하던 연금개혁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긴 마찬가지다. 정부가 보험료율 인상(9→13%)과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을 담은 단일 개혁안을 올해 9월 제시했는데, 공을 넘겨받은 국회에선 논의 기구에 대한 합의도 못 했다. 탄핵 정국까지 더해져 여야 간 합의는 더 어려워질 전망이다.
고령자 계속고용 등을 포함한 노동 현안도 제 속도를 내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안에 계속고용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의 논의 결과를 기다려왔다. 그런데 한국노총이 계엄 사태를 계기로 대화를 중단했고, 경사노위 대국민 토론회도 연기됐다. 한국노총은 현재 상황에선 재개 여부가 불투명하다는 입장이다.
고용부와 여당이 함께 추진해 온 노동약자지원법 제정도 난항이 예상된다. 윤 대통령이 5월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내세운 과제이기도 한 이 법안은 플랫폼 종사자나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노조에 가입되지 않은 미조직 노동자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었다.
교육개혁 과제 추진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내년 3월 전국 초·중·고에 도입되는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의 경우 현재 교육부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정책이지만, 야당의 반대 목소리가 커 정책이 힘을 받기 어려워졌다. 이 밖에 유보통합(어린이집·유치원 통합) 등 여당의 협조를 얻어 법 통과가 필요한 정책이 많아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사회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소집하고 국정 공백 최소화를 당부했다. 이 부총리는 “각 부처의 주요 정책과 현안 과제들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철저히 챙겨 달라”고 강조했다. 이 부총리는 매주 사회관계 장관 간담회를 열고 사회관계 현안을 수시로 점검하고 협력사항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