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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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사람은 모르고 새들만 아는 것들

차유오

 아무도 없는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 내리는 사람도 없고 기다리는 사람도 없지만 계속해서 멈추는 버스. 텅 빈 가게를 서성이는 고양이와 더러워진 물. 힘없이 쓰러져가는 건물.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것 같은 오후. 도로를 지나가는 장례차. 누군가의 한 시절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힘차게 걸어가지만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사람. 무언가를 찾고 있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사람. 잃어버린 물건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버스가 버스를 지나가고 사람이 사람을 지나가는 풍경. 한곳에 모여 있던 새들이 전부 날아가는 순간. 사람은 모르고 새들만 아는 것들

 

마침 “한곳에 모여 있던 새들이 전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떼 지어 찬 하늘을 가로지르는 것을. 와, 저기 봐요. 옆에 선 이가 신기하다는 듯 위를 가리켰다. 뭐 딱히 새삼스러운 장면도 아닌데, 그러면서도 손이 가리키는 방향대로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토요일 저녁이었다. 사람들로 가득한 서울의 한 공원에는 묵직한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인파로 북적이는 길을 오래 걸었다. 수많은 사람이 버스에 오르고 내렸다. 어느 때보다 느리게 바퀴를 굴리며 계속해서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버스. 우리의 한 시절이 혼잡하게 지나가는 것. 무성한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무엇을 했나? 어떤 마음을 품었나? 모조리 기억하고 기록할 수 없다 해도, 텅 빈 나중을 상상한다 해도 아주 쓸쓸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은 모르고 새들만 아는 일들이 세상에는 수두룩할 것이다. 그러나 가끔은 사람도 새들도 다 아는 일이 있겠지. 다시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것 같은” 길을 걷게 될 때는 그 하늘의 새들이 풀어낸 또 하나의 퍼레이드를 떠올릴 것.

 

박소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