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소득이 올라가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함에 따라 의약품 소비는 일상적인 소비 활동이 되었다. 의약품에 관한 국민적 관심도 질병치료의 개념을 벗어나 질병예방과 더 건강한 삶을 위한 것으로 바뀌었다. 또한, 만성질환 치료제 사용, 적극적인 의약품 정보 수집, 온라인을 통한 정보교류 등으로 소비자들의 의약품 사용 욕구도 증가하고, 의약품을 스스로 선택한 경험이 늘어나면서 소비자가 스스로 증상을 판단해 의료제품을 사용하는 ‘셀프메디케이션’(Self-medication)에 대한 자신감도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약품을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으로 나눈다. 전문의약품은 적응증, 습관성, 내성, 부작용, 투여경로의 특성상 의사나 치과의사의 전문적인 진단 및 지시?감독이 필요한 의약품이다. 일반의약품은 오남용 우려가 적고 의사나 치과의사의 처방없이 사용해도 안전성 및 유효성을 기대할 수 있는 의약품으로 정의하고 있다.
의약분업 제도가 도입된 2000년도 핵심적인 정책목표는 의약품 선택에 치료적 효과성 외에 특정 직능의 이익이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고 리베이트 등 왜곡된 마케팅을 차단하는 동시에 소비자의 의약품 자기선택 능력을 향상시키고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의약분업 이전에는 전문의약품이 39.0%, 일반의약품 61.0% 비율을 차지했다. 의약분업 이후에는 전문의약품 61.5%, 일반의약품 38.5%로 전문의약품 비율이 대폭 늘어났다. 이후 2012년 8월 분류 재평가를 통해 전문의약품 56.4%, 일반의약품 43.6% 비율이 됐고, 현재는 전문의약품 75.9%, 일반의약품 24.1% 비율에 이르고 있다.
다만, 많은 국가에서는 일반의약품 시장 확대에 대해 자가치료에 의한 의료비용 절감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처방의약품, 즉 전문의약품을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하는 것이 적절하며 이를 통해 의약품 소비자들의 건강 수준이 향상될 수 있다고 보고됐다. 각 국가별로 의약품 분류체계나 관리체계는 조금씩 다르나, 지속적으로 일반의약품을 확대해 나가거나 정기적으로 전문의약품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위한 검토를 해나가고 있다.
국내 의약품 분류 전환은 다른 국가와 달리 정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의사·치과의사 및 약사 관련단체, 소비자 단체에서 분류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심사 결과에 따라 필요시 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의약분업 이후 사회적 요구가 증가한 소비자의 의약품 선택능력 향상과 접근성 확대에 대한 정책목표도 뚜렷하게 달성해 나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약분업 당시 지적된 약사의 복약지도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으며, 의약품 정보제공과 표시제도 개선도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로 소비자들이 일반의약품을 활용한 셀프메디케이션 효익을 직접 체감할 기회가 늘어났고, 만성질환 증가 및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른 의료비 지출이 증가하는 등 보건의료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약품 분류 전환을 통한 일반의약품 시장확대는 소비자선택과 접근성 향상, 의료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중요하고 효과적인 정책수단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조윤미 미래소비자행동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