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전쟁 - 현대미술은 어떻게 미국에 진출했는가/ 휴 에이킨/ 주은정 옮김/ 아트북스/ 3만3000원
현대미술의 대명사 피카소는 당대 미국에서도 유명했을까.
20세 초 미국은 현대적이지도 선도적이지도 않았다. 1913년 뉴욕에서 열린 ‘아모리 쇼’는 현대미술을 미국에 소개한 기념비적 전시회였지만 긴 시간이 지나서야 현대미술관이 겨우 문을 열었고, 약 30년 동안 대중과 미술계는 이 새로운 예술을 외면했다. 심지어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의장을 맡았던 은행가 J. P. 모건 또한 유럽 거장들의 작품만이 진짜 미술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 일찍이 동시대 미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대중의 인식을 바꾸고자 노력한 인물들이 있었다. 존 퀸(John Quinn)과 앨프리드 H. 바 주니어(Alfred H. Barr Jr.). 두 사람은 생전에 서로 만난 적이 없지만 20세기 초, 거대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전환의 시대에 현대미술을 미국에 들여오고자 헌신했다. 저자는 이들을 중심으로 20세기 초부터 중반까지의 방대한 자료를 촘촘하게 엮어 세계문화사의 변화를 미술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낸다.
뉴욕 월 스트리트의 변호사 존 퀸은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와 T. S. 엘리엇의 시를 미국에 소개하고 논란이 무성한 연극을 후원했다. 아방가르드 회화 작품과 모더니스트 산문을 열정적으로 지지했는데, 루마니아 조각가 콘스탄틴 브란쿠시의 ‘포가니 양’,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등을 소개했다. 금기를 위반한 소설들을 변호했을 뿐 아니라, 현대예술에 부과되는 가혹한 수입관세를 없애고자 의회를 상대로 로비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앨프리드 바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초대 관장직을 맡았다. 그의 분투기는 제2차세계대전, 경제위기 등 급변하는 세계정세의 파도를 뚫고 유럽에서 미국으로 대서양을 건너 예술의 지형도가 변화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현대미술의 상징이자 부적과도 같은 피카소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가히 전쟁이라 불릴 만큼 맹렬하고 치열한 시도와 실패가 뒤얽힌 대서사다.
이밖에도 전설적인 미술상 폴 로젠베르그와 다니엘 헨리 칸바일러 등 미술계 안팎의 인물들이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거대한 역사를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벅차게 다가온다. 역사가 매력적인 것은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