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본격적인 시추 작업에 돌입했다. 이 사업은 윤석열 대통령의 깜짝 발표 이후부터 액트지오의 신뢰성 문제와 정치적 논란에 휩싸여 왔다. 시추 작업이 개시된 지금도 인근 어민 보상 문제가 지속되며 갈등의 불씨가 남아 있다.
21일 석유공사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시추선 ‘웨스트 카펠라 호’는 20일 포항 앞바다에서 약 40㎞ 떨어진 대왕고래 구조에서 탐사 시추를 시작했다. 웨스트 카펠라 호는 이달 9일 부산항에 입항한 뒤 기자재를 선적해 17일 시추 현장에 도착했다. 이후 인근 해저면 시험 굴착 등 준비 작업을 마치고 시추에 돌입했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발표 초기부터 여러 의혹에 직면했다.
핵심은 매장 가능성을 분석한 미국의 소규모 업체 액트지오(ACT-Geo)의 신뢰성 문제였다. 액트지오가 과거 세금 체납으로 법인격을 상실한 상태였던 점과 함께 규모가 작아 신뢰도가 낮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액트지오의 자료를 검증한 비토르 아브레우 박사와 석유공사 동해탐사팀장 간의 ‘지인 논란’도 불거졌다. 두 사람은 논문 공동저자였으며, 이로 인해 분석 결과의 객관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탐사자원량 추정과 관련한 홍보 전략도 비판받았다. 초기에는 ‘최대 140억 배럴’이라는 수치를 강조했지만, 이후 ‘최소 35억 배럴’로 설명을 수정하면서 초기 발표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일었다.
시추 과정에서 지진 발생 가능성과 인근 어민들의 어획량 감소 문제도 우려된다. 20일에는 포항시 구룡포 홍게·선주협회 소속 어업인 약 300명이 조업 피해를 주장하며 해상 시위에 나섰다. 어민들은 시추선 주변에 47척의 선박을 집결시켜 피해 보상을 촉구했다.
프로젝트는 정치적 논란으로도 주목받았다.
야권은 대왕고래 프로젝트를 ‘윤석열표 사업’으로 규정하며 497억 원의 출자금을 전액 삭감했다. 당초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예산 50억 원 삭감을 조건으로 일부 합의가 이루어졌으나,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단계에서 야당이 전액 삭감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산자위에서 합리적으로 조정된 예산이 예결위 단계에서 갑자기 삭감됐다”며 “사업 중단 시 발생할 위약금을 고려하면 진행을 멈출 수 없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예산 부족 상황에서도 사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에너지 안보와 국가 경제를 위해 사업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상웅 국민의힘 의원은 19일 국회 산자위 전체회의에서 “국가 대계를 좌우하는 일이므로, 부족한 자금은 추후 다른 방법으로 마련하더라도 사업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 지지율 반등을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프로젝트가 발표되었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김동섭 석유공사 사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인물”이라며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면 총선 전에 발표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논란 속에서도 시추 작업은 앞으로 40~50일간 이어질 예정이다. 석유공사는 시추 작업이 종료되면 데이터를 분석해 내년 상반기 중 1차 시추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이번 프로젝트가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딛고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는 성과를 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