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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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민간인 비선에 휘둘려 계엄 주도한 정보사 엄중 책임 물어야

12·3 계엄 이후 드러난 군의 군기 문란이 놀라운 수준이다. 울며불며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군 지휘관들 모습에서 과연 이들이 포진한 군대가 유사시 나라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북파공작 등 가장 은밀하고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정보사령부가 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권력욕과 출세욕에 사로잡힌 민간인 ‘비선’의 지시에 따라 놀아났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무너진 군 기강을 어떻게 바로 세울지 걱정이 앞선다.

성 비위 문제로 6년 전 불명예 제대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이번 불법 계엄의 ‘막후 설계자’로 알려졌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측근으로 햄버거 가게에서 계엄을 모의하고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에게 “선관위를 장악하라”고 지시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계엄 실행에 북파공작원(HID)까지 투입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는 주장도 나왔다. ‘퇴역 군인이 주도한 희대의 군정논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보사 내부에서는 “조직이 쑥대밭이 됐다”고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모든 책임을 노 전 사령관에게만 떠넘기는 건 어불성설이다. 심각한 군 기강 해이로 지탄을 받은 정보사가 아닌가. 지난 7월 소속 군무원이 중국 정보요원(조선족)에게 군사기밀을 넘기는 바람에 축적한 대북·해외 첩보망이 붕괴했다는 충격적 사실이 밝혀졌다. 8월에는 문 정보사령관과 부하 여단장이 서로 고소·고발하면서 진흙탕 싸움을 벌인 사실이 공개됐다. 당시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 “국민께 송구하다. 정보사 혁신 등 후속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했다. 불과 나흘 만에 윤석열 대통령이 김용현 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 후보로 지명하면서 사령관 직무배제와 정보사 조직 개편 작업은 흐지부지됐다. 정보사가 이렇게까지 망가진 근본 책임이 통수권자인 윤 대통령에게도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김 전 장관의 고교 후배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계엄에 개입했는데도 방첩사는 정보사와 달리 내부 인사들의 연루 정황이 아직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2018년 기무사령부가 ‘계엄 문건’으로 물의를 빚은 뒤 안보지원사령부로 개편되면서 정치적 중립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정보사도 조직 해편(解編)을 통해 각성의 기회로 삼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중대한 안보 자산인 정보사를 망가뜨린 경위를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