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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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중잣대 논란에 부정선거 의혹 제기도 막겠다는 선관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부산 수영구)을 ‘내란공범’으로 표현한 지역구 현수막 게시는 허용하고, 정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비판하는 내용의 현수막 게시는 불허해 논란이 일고 있다. 조국혁신당이 지난 11일부터 정 의원 지역구에서 ‘윤석열 탄핵 불참 정연욱도 내란공범이다!’라는 문구의 현수막을 내걸자, 정 의원이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현수막을 게시하려 했지만 선관위에서 제동이 걸렸다고 한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어제 “선관위가 이 대표를 위해 사전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선관위는 “해당 현수막들이 특정 후보의 당선 또는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판단을 달리했다”고 한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조기 대선’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현수막은 이 대표의 낙선을 목적으로 하는 사전 선거운동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반면 ‘정연욱 내란공범’은 다음 총선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낙선 목적의 사전 선거운동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선거까지 남은 시간을 근거로 판단을 달리하는 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의힘이 “탄핵 인용이란 결과뿐 아니라 민주당 후보를 이재명으로 기정사실화하는 편파적인 해석”이라고 한 비판도 일리가 있다.

선관위가 이중잣대 논란에 휘말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2021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내로남불’, ‘위선’ 문구를 담은 현수막을 제작했으나, 선관위는 이 문구가 민주당을 연상시킨다고 금지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대장동 부패 게이트 특검 거부하는 이가 범인’이란 피켓의 사용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면서도 ‘진짜 몸통은 설계한 이다!’는 문구는 ‘이’가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를 연상케 한다며 사용 불가 판정을 내렸다. 선관위가 편파적이란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선관위는 이른바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을 강하게 처벌할 수 있게 법 개정을 준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현행 공직선거법으로는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을 처벌할 근거가 없어 국회에 입법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드러났듯 근거 없는 부정선거 의혹 제기가 사회 혼란을 키우는 건 맞다. 그렇더라도 부정선거 의혹 제기조차 막겠다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과잉 대응이 아닐 수 없다. 선관위가 스스로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