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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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韓 탄핵 무기로 ‘정국 방향키 잡기’… 與는 ‘버티기 전략’ [野, 韓에 특검법 압박]

강대강 치닫는 정치권 셈법은

野, 특검법 결정 24일로 밀어붙이기
헌법재판관 임명권 행사 압박 나서
美 “韓대행 전적 신뢰” 메시지 부담
韓 탄핵 땐 정국불안정 심화도 우려

與 “대행이 인사권 행사 불가” 맞서
권한쟁의심판 제기 ‘법적 다툼’ 예고

22일 더불어민주당이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를 향해 12·3 비상계엄 특검법 수용 시한을 24일로 못 박고선 ‘크리스마스 선물’을 요구한 장면은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지만 여전히 법안 공포권을 비롯한 실권을 윤석열정부가 쥐고 있는 것에 대한 답답함의 표출로 분석된다. 민주당이 한 권한대행 탄핵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지만 현실화할 경우 연말연시에 정국 불안정성을 더 키울 수 있어 야권에서조차 “실행에 옮기긴 쉽지 않은 선택지”라는 뒷말이 나온다. 미국이 “한 권한대행의 과도적 역할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힌 점도 야당 입장에선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韓, 신속 진행하라”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대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인 한덕수 국무총리를 향해 내란 상설특검 후보 추천 즉시 의뢰, 내란 일반특검법 및 김건희 특검법 24일 이전 공포, 헌법재판관 임명 절차 신속 진행을 촉구했다. 남제현 선임기자

◆권한 행사해도 안 해도 문제

 

야당이 ‘총리 탄핵’이란 강경책까지 꺼낸 것은 한 권한대행이 월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대통령 권한대행인) 총리에겐 인사권과 법률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능동적 권한이 없다”(김민석 최고위원)고 본다. 하지만 한 권한대행이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야권의 6개 중점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데 이어 특검법까지 신중 검토하겠다고 나서며 민주당의 심기를 건드렸다. 이 와중에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여부가 쟁점이 된 것이다.

 

이와 반대로 민주당은 한 권한대행이 인사권에 해당하는 헌법재판관 임명권은 행사해야 한단 입장이다. 23일과 24일 야당 주도로 인사청문 절차를 밟게 될 재판관 후보 3인은 국회 추천 몫이므로 청문회를 마친 뒤 지체 없이 임명하라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인사권 행사는 불가하다고 맞서고 있다.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 임명은 국가원수의 지위에서 나오는 것이어서 대행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가 (윤 대통령을) 탄핵소추하고 탄핵안에 대해 심판할 재판관을 또다시 임명하는 건 검사가 자신의 기소 사건 판사를 고르는 격”이라며 야당이 재판관 임명동의안을 처리하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제기해 법적 다툼을 벌이겠다고 예고했다.

 

◆野서도 “탄핵 쉽지 않아”

 

한 권한대행이 야권 요구를 수용하지 않더라도 탄핵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 야당 의원은 “탄핵이 현실화하면 여·야·정이 교착 상태에 빠져서 서로가 아주 힘들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권의 한 인사도 “한 권한대행까지 탄핵하면 민주당에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할 텐데 그런 위험까지 감수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한 총리의 권한대행 체제에선 민주당의 요구를 선별적으로 수용해줘야 국정이 안정될 수 있다”면서도 “야당 입장에서도 계속 탄핵 카드를 쓸 수는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 총리를 향해 또 탄핵 카드를 쓰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덕성여대 조진만 교수(정치외교학)는 “민주당도 양보할 것은 해야 한다”며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생각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조국혁신당은 한 권한대행 탄핵소추안을 공개하며 선제적인 압박에 나섰다. 혁신당 김선민 당대표 권한대행은 “민주당과 지속해서 물밑 협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 국무총리. 뉴시스

◆美 “韓 대행 전적으로 신뢰”

 

미국이 한 권한대행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드러낸 것은 한 권한대행 탄핵을 국내 정치 사안으로만 볼 수 없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19일(현지시간)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워싱턴에서 열린 아시아 태평양 지역 언론 간담회에서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의 임기 마지막 몇 주 안에 한 권한대행 체제의 한국 정부와 고위급 대면 소통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한 권한대행은 수십년간 한국 정부에서 재직한 경험이 있으며 주미대사를 역임한 만큼 잘 알려져 있다”고 평가했다. 전날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한 권한대행을 “존경받는 지도자”로 평가하며 “전적인 신뢰를 갖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미국 측 입장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잇단 외신 인터뷰에 이어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을 접견하고 “미국은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나라”라고 발언하는 등 미국과의 스킨십을 늘려가는 와중에 나온 것이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체제를 앞두고 대미 관계 강화를 위해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야 하는 상황인데 한 권한대행을 탄핵할 경우 그 후폭풍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점도 민주당을 망설이게 하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배민영·유태영·최우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