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
불과 10년 전만 해도 중국산은 일회용품에 가까운 ‘싸구려’ 이미지가 강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선진국의 위탁생산자(OEM) 역할로 남을 거라 여겨졌지만, 중국 산업의 잠재력을 얕본 것이었다.
오늘날 중국은 가전과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압도적인 가성비와 자체적인 기술을 가지고 무섭게 시장 점유율을 키우면서 한국 제품의 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글로벌 소비자들은 TV 등 전자제품을 사용할 때 더 이상 ‘메이드 인 차이나’를 한국산 아래로 보지 않는 추세다.
22일 시장조사업체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프리미엄 TV 시장 점유율은 30%로 지난해 같은 분기(43%) 대비 13%포인트 급감했다. LG전자도 지난해 2위(20%)에서 4위(16%)로 밀려났다.
한국 TV 점유율을 빼앗은 것은 중국의 하이센스(Hisense)와 TCL이었다. 같은 기간 하이센스 점유율은 14%에서 24%로 증가해 2위를 차지했다. TCL은 11%에서 17%로 올라 LG전자를 처음으로 제쳤다.
그동안 한국 전자기업들은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초월적인 기술을 가지면서 경쟁력 우위에 있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 글로벌 소비자들은 한국 기업 제품이나 중국 제품 간 액정표시장치(LCD) TV 기술력 차이가 거의 없다고 보고 있다.
특히 중국 브랜드들은 프리미엄 TV 시장 점유율을 키우기 위해 국내 브랜드보다 먼저 100인치 초대형 TV를 선보일 정도로 초대형 TV 시장 진출에 적극적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TCL은 올해 3분기 80인치 이상 TV 시장에서 출하량 기준 23%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2개 분기 연속 삼성전자를 앞질렀다. 반면 삼성전자의 출하량 점유율은 전년 동기 26%에서 올해 3분기 19%로 감소했다. 3위인 하이센스와의 점유율 격차도 1.65%포인트로 거의 따라잡혔다.
심우중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가전 분야는 반도체와 달리 기술적인 차이가 크게 없다 보니 소비 트렌드에 맞는 제품을 잘 개발해 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국 기업들이 소비자 트렌드를 파악하는 점에서 빠르게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초월적 격차’… 중국 로봇청소기와 드론 산업
로봇청소기 분야는 한국 브랜드가 중국 기업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세에 있는 분야다. 시장조사 업체 IDC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전 세계 로봇 청소기 출하량은 511만7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15.7% 증가하고 있다. 연간 기준 로봇청소기 2000만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올해 2분기 출하량 기준 전 세계 점유율 상위 10개 기업을 보면 미국 아이로봇(2위)을 제외한 나머지 9곳 모두 로보락, 샤오미, 드리미, 윈징 등 중국 기업 또는 중국계 기업이다.
특히 중국 대표 로봇청소기 기업인 로보락은 처음으로 아이로봇을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시장에서도 로보락은 3분기 기준 46.5%의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같은 기간 각각 21%와 25% 수준으로 내수시장에서도 열세였다. 중국의 로봇청소기가 전 세계를 휩쓰는 이유는 연구개발(R&D) 분야 투자에 있다. 로보락은 올해 상반기에만 788억원을 R&D에 투자했다. 이는 전년 상반기보다 42.9% 늘어난 액수다. 게다가 상반기 채용 직원 중 30% 이상이 R&D 인력이었다.
또한 상업용 드론 분야에서도 중국의 DJI가 글로벌 점유율을 60%를 넘어 1위 자리를 굳혔다. 액션카메라를 포함한 360도 광각카메라 시장도 미국의 고프로, 중국의 인스타360과 DJI, 일본 캐논 파나소닉 등이 대부분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등 한국 업체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다.
◆애플에 치이고 중국에 쫓기고… 삼성 스마트폰
삼성전자의 갤럭시 스마트폰 역시 중국의 추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삼성 갤럭시가 전 세계 점유율 1위(20%)인 것은 맞지만 프리미엄 시장에선 애플에, 중저가 시장에선 중국 스마트폰에 치이고 있는 상황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을 제외한 600달러 이상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이 점유율 75%를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20%로 뒤를 이었고 중국 업체를 합한 수치가 3%대로 집계됐다.
하지만 중국은 강력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프리미엄 스마트폰 생산을 늘리고 있다. 중국 내 프리미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애플이 64%로 1위를 차지했지만, 삼성은 3%로 5위로 나타났다. 2위는 화웨이(20%)로 나타났고, 3위와 4위는 각각 샤오미와 오포(OPPO)로 집계됐다.
삼성 갤럭시의 혁신이라고 여겨진 폴더블폰 기술도 중국 업체가 따라잡았다는 평이 많아지고 있다. 올해 2분기 기준 서유럽 폴더블폰 시장에서 중국 아너(Honor)의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455% 급증하면서 삼성전자를 제치고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중저가 시장은 더 암울하다. 인구가 많은 아프리카나 인도, 동남아 시장은 중국의 대표적인 중저가폰인 트랜션·샤오미·비보(Vivo)가 빠르게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출하량 기준 아프리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는 트랜션으로 점유율은 50%대를 유지했다. 2위 삼성전자는 2022년 30%대 점유율에서 20% 이하로 줄었다.
전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출하량 기준 샤오미와 비보가 각각 19%, 18.9% 근소한 차이로 나란히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동남아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인도네시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오포(22%), 샤오미(19%), 트랜션(18%), 삼성전자(16%) 순으로 집계됐다. 필리핀과 태국도 스마트폰 1위는 오포로 각각 점유율 33%, 24%로 나타났다. 동남아에서 삼성 갤럭시가 1위를 차지한 곳은 베트남으로 점유율 26%로 나타났지만, 2위인 오포(23%)와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이다.
카운터리서치는 보고서를 통해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회복세로 상승 기류를 타고 있는 하이엔드 시장 공략을 위해 본격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반도체, 파운드리와 D램에서 ‘치킨게임’
불행 중 다행히도 최첨단 기술력을 요구하는 반도체 분야에선 중국이 한국을 따라오려면 멀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중국 반도체 산업은 올해에만 258조7100억원가량을 투자할 정도로 성장세에 있다.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비교적 진입하기 쉬운 파운드리로 진출하고 있다. 중국의 SMIC를 대표하는 파운드리 업체들은 미·중 갈등으로 첨단 공정 대신, 통상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상 공정을 가리키는 성숙 공정의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중국 최대 파운드리인 SMIC의 시장점유율은 지난 3분기 6%로 업계 3위 자리를 굳혔다. 같은 기간 업계 6위인 화홍반도체(2.2%)와 합치면 중국 파운드리 업체의 점유율은 8.2% 이상으로, 삼성전자(9.3%)에 1%포인트 차로 좁혀진다.
초격차를 유지하던 D램도 치킨게임에 빠질 위기에 처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 1G×8)의 지난달 평균 고정거래 가격은 1.35달러로 지난 7월보다 35.7% 급락했다.
D램 가격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중국으로 꼽히고 있다. 중국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와 푸젠진화(JHICC)는 기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D램을 공급하면서 가격 하락 요인은 더 커졌다. D램 가격의 하락은 삼성전자 실적 악화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업계 관계자는 “CXMT가 구형 D램에 이어 첨단 D램까지 저가 물량 공세에 나선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