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재명아 감방가자”(O) “이재명은 안됩니다”(X)… 선관위 현수막 문구 제재 논란

與 정연욱의원 현수막 문구 놓고
선관위 “사실상 낙선 운동” 불허

與 “탄핵 인용 전… 정치중립 위반”
정 의원측도 “다의적 의미” 반발
‘1합시다’ 허용… ‘내로남불’ 불허도

‘12·3 비상계엄 사태’에서 비롯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이 한창인 와중에 돌연 현수막 논쟁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정연욱 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 달려던 현수막 문구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문제 삼으면서다.

 

현수막에 담긴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란 문구는 대선 출마가 유력시되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낙선운동 성격을 담고 있어 게시를 불허했다는 것이 선관위 입장이다. 여권은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에 선관위가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편파적 판단을 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정연욱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정 의원을 ‘내란공범으로 표현한 현수막은 게재되었지만, ‘이재명은 안 됩니다’라는 현수막은 선관위로부터 게재 불가 결정이 내려졌다. 정 의원 페이스북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현수막 논쟁의 진앙은 정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수영구다. 조국혁신당은 지난 11일부터 이 지역에 ‘내란수괴 윤석열 탄핵 불참 정연욱도 내란공범이다’라고 적은 현수막을 걸었다. 정 의원은 맞불을 놓되 화살을 민주당에 겨누기로 하고 논란이 된 ‘안 됩니다’ 현수막을 걸기로 했다. 문구를 완성한 정 의원 측은 국회에 파견된 선관위 협력관에게 사용 가능 여부를 문의했고, 선관위는 담당 부서인 해석과 심의를 거쳐 최종 불허 통보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선관위는 ‘안 됩니다’ 문구를 사용할 경우 공직선거법 254조 선거운동기간위반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 조항은 선거운동 기간 전에 선거법이 허용하는 범위 밖에서 각종 인쇄물 등 매체를 활용해 선거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 벌금형이다. 선관위가 정 의원의 현수막 문구를 사실상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본 것으로 분석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당연히 대선에서 특정인이 적임자가 아니라는 의미로 인식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관위 측은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됐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봤을 때는 대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며 “정치적 구호는 직접적인 선거운동에 이르지 않기 때문에 제한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혁신당이 정 의원을 향해 ‘내란공범’이라고 한 것이나 국민의힘이 이 대표를 겨냥해 ‘재명아 감방 가자’, ‘이재명을 구속하라’ 등 문구를 쓰고자 하면 선거운동이 아닌 단순 정치 구호에 해당하기 때문에 제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선관위의 입장이다.

여당은 “선관위가 정치 중립을 위반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정 의원 측은 “문구상 ‘안 됩니다’의 의미를 선관위가 공식 문의한 적이 없다”며 “‘정치를 하면 안 된다’ 등 다의적 의미로 지역민들에게 해석을 맡긴 것인데 선관위는 ‘조기 대선에 나가면 안 된다’로 해석해 정치적 판단을 했다”고 했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탄핵 심판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는데 선관위가 무슨 권한으로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을 전제해 결정했나”라며 “선관위가 이 대표를 위해 사전 선거운동을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서지영 원내대변인도 “선관위가 이 대표를 민주당 후보로 미리 정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선관위 판단을 둘러싼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2021년 재보궐 선거 땐 TBS가 ‘#1합시다’ 캠페인을 벌였는데, 기호 1번 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선관위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반면 ‘내로남불’이란 문구는 민주당을 떠올리게 한다며 쓰지 못하게 했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윤 대통령이 각 지역을 돌며 민생토론회를 열자 야권과 시민사회로부터 사전 선거운동이란 지적이 나왔는데 이는 문제 삼지 않았다.


배민영·김병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