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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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가게’ 배우 주지훈 “제가 계속 연기하는 원동력은 ‘궁금증’”

최근 공개된 디즈니+ 시리즈 ‘조명가게’는 작품 속 조명가게의 따스한 빛을 닮았다. 끝까지 보고 나면 은은하고 환한 기운이 마음을 밝힌다. 강풀 웹툰 원작의 이 작품은 호러와 미스터리로 시작하지만 마지막에는 사랑과 연민으로 끝맺는다.

 

이 시리즈를 본 이들의 상당수는 ‘초반엔 갸우뚱했는데 마지막에 가서 엉엉 울었다’고 실토한다. ‘조명가게’는 인물의 사연을 하나씩 쌓아가 초반엔 호소력이 약하지만, 뒤로 갈수록 응집력이 폭발한다. ‘후반부 눈물’ 지분의 상당수는 배우 주지훈과 이정은에게 있다.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주지훈을 만났다.

 

그는 이 작품에서 어둑한 골목 깊숙이에서 유일하게 빛을 내는 조명가게의 주인장 원영이다. 구부정한 등에 늘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물끄러미 앉은 채 손님에게 “어떻게 오셨습니다” 묻는 모습은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 작품은 메시지가 앞에 있고 연기가 이를 보강하는 구조”라며 “제 캐릭터는 1∼4부에서 일종의 기능성을 띄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배우의 연기와 개성을 부각시키기보다, 작품에서 필요한 기능을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뜻이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런 기조는 7, 8부에 이르러 바뀐다. 많은 이들이 그와 이정은이 감정을 폭발시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고 평한다. 주지훈은 이에 대해 별달리 생색을 내지 않았다. 그는 “(이정은이라는) 좋은 동료의 힘인 것 같다”며 “좋은 동료가 그렇게 훌륭한 연기를 해주니까 상황이 굉장히 자연스러웠다”고 회상했다.

 

제작자·감독들에게 ‘프로듀서형 배우’라는 말을 듣는다는 그는 인터뷰에서 자기 연기 자체보다 큰 그림을 많이 언급했다. 작품의 예산, 스태프들의 준비, 극 전체의 흐름, 동료 배우와의 미묘한 합 속에 배우의 연기가 어디쯤 놓이는지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자녀가 없는 그가 이 작품에서 아버지 연기를 훌륭히 해낸 데 대해서도 상대 배우와 스태프들의 도움을 들었다. 

 

“제가 애기가 없잖아요. (그러니 부성애 연기가) ‘가능할까’ 이런 두려움이 있어요. 이런 두려움을 없앨 수는 없고, 좋은 동료들 덕분에 이를 최대한 제거하는 것 같아요. 내가 감독, 미술·카메라를 신뢰하면 불안감이 조금씩 사라지고 감정이 오게 돼요. 감사한 일이죠. 제가 느낀 (부모님의 사랑이라는) 간접경험을 갖고 최대한 집중하려 했어요. 두려웠지만 도움들을 많이 받아서 그래도 나쁘지 않게 나온 것 같습니다. 게다가 함께 나온 애기가 너무 작고 소중하잖아요.”

 

콘텐츠가 짧아지고 자극적으로 변한 요즘, ‘조명가게’는 이단아 같은 작품이다. 초반에 몰입이 덜 돼도 계속 봐야 후반의 감동이 커진다. 극 흐름도 다소 느릿하다. 주지훈은 “한국 드라마만이 가진 독특함이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방송국에서 미리 편성을 주지 않으니 대본을 3, 4부 갖고 시작한다”며 “그러다보면 이야기가 100% 플래시백 형식이 된다. 자극을 준 다음에 ‘사실 이랬어요’ 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다보니 “서사를 심도 있고 길게 바라보는 방식이 한국 시장에서 어느덧 멀어졌다”고 그는 해석했다. 

 

“(‘조명가게’ 같은) 서사 중심의 장르가 주류는 아니예요. 하지만 잘 되는 작품 중에 이런 장르는 무조건 끼어 있습니다. 세계 시장은 크니까요. 그만큼 사람들이 좋아하는 장르가 많아지니 한국에서 200만명만 좋아해도 각 나라에서 그 정도 비율로 좋아해주면 전체 수익이 커지고 흥행이 되는 거죠.”

 

그는 “‘강풀 유니버스’(강풀 작가의 세계관)는 서사를 풀어나가다 어느 순간 겹치게 되면서 감동이 있다”며 “이런 작품은 잘 만드느냐 아니냐의 싸움이고, 현실적으로 이렇게 만들려면 자본이 많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주지훈은 올해 ‘조명가게’ 외에도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지배종’,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tvN 드라마 ‘사랑은 외나무 다리에서’까지 많은 작품을 선보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도 내년에 공개된다. 다작의 배결이 뭘까. 

 

“3년 전만 해도 작품 기획·개발이 많이 되고 있었어요. 200편 정도. 꽤 많은 배우들이 저와 비슷하거나 더 많이 작품을 의뢰받을 거예요. 각자 일하는 방식이 다른 거 같아요. 전 대본을 보고 거절하기보다 작품에서 장점이 보이면 일단 감독·작가·제작자와 만나서 얘기해요. ‘이 상태로는 제가 소화가 힘들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냐.’ 길게 대화를 나누며 서로 맞춰가요. 이렇게 중간 과정이 있어서 (출연작) 수가 많은 것 같습니다.”

 

배우 데뷔 18년이 된 그는 자신이 계속 연기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궁금증’을 들었다. 그는 “사람들이 궁금하다”며 “저와 잘 맞는 사람 있으면 이 사람은 어쩜 이렇게 멋있을까, 어쩌면 이렇게 부드럽고 아름답게 살까, 이상한 사람을 보면 쟤들은 왜 저럴까, 도대체 무슨 일을 해서 저렇게 된 거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혼자 상상을 많이 해요. 지금 인터뷰 끝나고 밖에 나가면 차들이 계속 지나가고 있잖아요. 이 비디오를 역으로 돌리면 저들이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인생이 있을 거예요. 저 차 하나가 집에서 나오다가 ‘어 키를 놓고 나왔어’ 이랬으면 저와 마주칠 수 없었을 거예요. 아니면 키를 놓고 와서 마주칠 수 있었을 수도 있죠. 이 인과가 너무 신기해요. 해외 유명 관광지 가면 인파가 꽉 차 있잖아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싶어요. 이런 호기심이 있다보니 이야기들을 봤을 때 ‘이거 싫어’라기보다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좀더 많을 수 있지 않을까.”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