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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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눈] 모든 의문이 풀렸다

尹, 타협·협치·양보 없는 정치
계엄이란 답 넣어보면 이해돼
여당도 사과·반성·쇄신 안 보여
극우에 기댄 퇴행의 연속 씁쓸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의문의 실마리가 풀렸다.

이번 정권에서 도무지 이해가 안 된 건 윤석열 대통령의 김건희 여사 문제 대처 방식이었다.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문제는 제때 사과만 했어도 호미로 막을 수 있었다. 검찰이 순리대로 수사만 했어도 민심은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을 것이다. 막판에 김 여사 특검을 협상해서 통과만 시켰어도 탄핵까지 치닫지는 않았으리라. 고비마다 윤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에 맞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입바른 소리를 하는 참모들은 격노를 들었고, 오랜 지인들은 멀어졌다. 전 과정이 상식적으로 타당치 않았고, 정무적으로 낙제점이었다. 윤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인사는 “압박해오는 수사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버티기 힘든 것 같아 보였다”고 했다.

이천종 정치부장

윤 대통령이 집권 내내 보여준 뺄셈의 정치는 그가 초보 정치인이라는 걸 감안해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보수 정당에 새바람을 일으킨 이준석 의원을 시작으로 한때 자신의 분신 같던 한동훈 대표까지 내쳤다. 중간에 팽당한 안철수·나경원·김기현 의원은 두말할 것도 없다. 당내에서 이 지경이니 야당과 협치는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니 피의자와 상대하면 안 된다는 강경파만 득세했다.

의대 증원을 골자로 한 의료개혁은 초반 강력한 지지를 받았지만 의사들의 거센 반발로 역풍을 맞았다. 국민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 의료대란이라는 초유의 위기 속에 절충안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했지만 윤 대통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에 책임자를 경질하라는 요구가 빗발쳐도 뭉갰다.

일련의 ‘이상한 정치’에 ‘상식’이 아니라 ‘계엄’이라는 답을 넣어보니 이해가 된다. 여차하면 한 방으로 판을 뒤집을 수 있는데 왜 타협하고 양보하는 고된 협치의 길을 가느냐고 여겼으리라. 야구를 좋아하는 윤 대통령은 계엄을 9회말 투아웃 만루 상황에 내세운 야심 찬 대타 카드로 계산했을 수 있다. 하지만 믿었던 홈런타자는 더블플레이를 넘어 최악의 트리플플레이(삼중살)로 경기를 허무하게 끝냈다.

용산에서 생겼던 의문이 이제 여의도로 번지고 있다.

12·3 비상계엄은 보수 정당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20.6%p(포인트) 격차로 나타나는 여론조사 결과(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가 23일 나왔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초현실적인 비상계엄에 세밑 일상을 빼앗긴 국민들의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수치다.

국민의힘은 그러나 아직 쇄신 방정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쇄신의 전제인 사과와 반성이 안 보인다.

‘차떼기’로 만신창이가 된 한나라당은 2004년 ‘천막당사’에서 석고대죄하는 읍소전략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8년 광우병 사태로 궁지에 몰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인왕산에 올라 광화문의 거대한 촛불시위를 보며 자책했다. 그렇게 멀어진 민심으로 다가가려 애썼다.

그렇지만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 대통령이 2연속 탄핵당할 위기에 처했는데도 민심과 멀어지고 있다. 탄핵 정국에서 당을 이끌 비상대책위원장은 친윤계 수도권 5선 권영세 의원으로 정해졌다. 권성동 원내대표와 함께 ‘원조 친윤 투톱’ 체제를 완성해 ‘도로 친윤당’이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과거 보수 정당 비대위 성공모델은 혁신과 중도였다.

보수 정당 비대위 중에서 대표적 성공사례는 2011년 박근혜 비대위다. 당시 비대위는 야당의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특검을 수용했다. 이념적으로는 극우와 절연하고 중도로 확장했다. 비대위원으로 이준석 의원을 비롯해 김종인 전 의원, 이상돈 중앙대 교수 등을 발탁했다. 진보 진영 이슈인 경제민주화도 선점했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은 ‘아스팔트 우파’에 손짓을 하고 있다. 당 안팎에선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스멀거린다. 의문투성이였던 이상한 정치와 절연하고, 상식의 정치를 복원해야 보수 정당이 ‘계엄의 강’을 넘을 수 있다.


이천종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