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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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산업 국가대항전 치열해지는데… 발목 잡는 ‘규제 장벽’

상의, 433개사 체감도 조사
기업 54% “경쟁국보다 규제 과도”
이차전지·바이오·반도체업 ‘한숨’
73% “시간·비용 측면 이행 부담”
기술·인력·금융규제 개선 목소리
경쟁력 높일 법안 조속 통과 절실
“미래 핵심분야 정부 지원 확대를”
#1. 바이오기업 A사는 채혈기와 혈당측정 진단기기를 하나로 합친 복합제품을 개발했다. 그러나 채혈기는 의료기기, 혈당측정 진단기기는 진단의료기기로 분류되기에 의료기기시험과 진단의료기기시험을 모두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A사는 “중복 인증을 받기 위해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2. 반도체기업 B사에서는 연구개발(R&D)을 하던 중 연구를 30분 정도만 더 하면 되는데 장비 전원이 꺼졌다. 주 52시간 근무를 맞춰야 해 강제 전원 종료된 것이다. 연구진은 다음 날 다시 연구를 위해 장비를 세팅하는 데만 2시간을 보내야 했다. B사는 “R&D를 하다 보면 속도를 붙여 쭉 이어가야 할 때가 있다. 근로시간이 유연하게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첨단산업 기업 2곳 중 1곳은 규제 수준이 경쟁국에 비해 과도하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첨단산업 국가대항전이 치열해지면서 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규제 개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25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첨단기업 433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첨단전략산업 규제체감도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 기업의 53.7%가 우리나라 첨단산업 규제가 경쟁국보다 과도하다고 답했다. 비슷하다는 23.7%, 과도하지 않다는 22.6%였다.

업종별로 경쟁국보다 규제가 강하다고 인식하는 비율은 이차전지 58.2%, 바이오 56.4%, 반도체 54.9%, 디스플레이 45.5% 순이었다.

기업 상당수(72.9%)가 규제 이행이 부담된다고 했다. 이유로는 규제가 너무 많아서(32.8%), 준수해야 할 규제기준이 높아서(23.1%), 자료제출 부담이 과도해서(21.8%), 교육 등 의무사항이 과도해서(11.1%) 등을 들었다.

기업들은 향후 첨단산업 규제 개선에 중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분야로 기술(29.6%), 인력(17.8%), 금융(14.7%), 환경(12.6%)을 꼽았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종은 인력, 이차전지와 바이오 업종은 기술 규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기술규제는 R&D, 인증·검사 등과 관련돼 있다. 특히 바이오기업의 43.6%가 기술규제 개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바이오업계에서는 유전자편집이나 디지털 치료기기 등 신기술 개발이 이어지는데, 기존 법·제도에서 규제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인력규제는 주 52시간제가 주된 문제로 지적됐다. 첨단전략산업 특성상 숙련된 전문인력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때문에 현실적 제약이 많다는 것이다. 그간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업계에서는 주 52시간 예외 적용을 요구했으나, 반도체특별법은 주 52시간 예외 조항을 두고 여야 간 이견이 있어 국회에 계류 중이다.

C사는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제조) TSMC는 노사가 합의하면 하루 근무시간을 12시간까지 늘릴 수 있어 핵심인재들이 근로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기술개발에 매달리고 있는데 우리는 주 52시간 근무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호소했다.

R&D 단계에서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첨단산업별 특성을 고려한 재원조달 지원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재계는 규제 완화와 함께 정부 지원 확대를 주문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첨단전략산업은 국가 경제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 분야인 만큼,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있는 첨단전략산업기금법, 반도체특별법, 조세특례제한법 등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해줄 지원법안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