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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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조직 정보사, 계엄 사태로 초토화… 기밀 정보 노출도 [계엄 동원된 정보사]

첩보요원들 활동 통해 정보수집·분석
작전 준비·실행 북파공작 부대도 운영
계엄 당시 선관위 투입·요원 대기 논란

은밀함·폐쇄적 특성에 계엄 사태 동원
前 사령관 노상원 존재가 ‘직접적 계기’

계엄 연루돼 부대명·간부 신상 등 노출
판교 예하 부대 위치도 거론 ‘보안 우려’

‘12·3 비상계엄 사태’로 군 정보수집을 주도하는 국군정보사령부가 초토화되고 있다. 정보사는 북파공작원 특수부대와 첩보요원을 양성해 운용하는 군내 비밀 조직이다. 이러한 특성 탓에 정치적 바람에 잘 휩쓸리지 않고 국내 정국과도 거리를 뒀다. 하지만 이번 계엄 사태에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을 투입했고, 특수임무 요원들이 경기 성남시 판교의 정보사 예하 부대 사무실에서 대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과거 군사정부 시절에 있었던 계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군내 사정에 밝은 예비역들은 정보사의 임무 수행 능력, 조직과 활동 등이 기밀로 분류되어 있는 은밀함을 오히려 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777부대가 무선 통신 감청 등을 통한 신호정보 수집을 담당한다면, 정보사는 첩보요원들의 활동을 통해 신호정보를 제외한 모든 영역에서의 정보수집·분석 기능을 갖고 있다. 여기에 북파공작원 부대도 운영한다. 비밀 작전을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데 필요한 조직과 정보, 충분한 규모의 병력이 사령부에 확보된 셈이다. 방첩 업무를 담당하는 국군방첩사령부의 경우 역대 정권에서 여러 차례 개편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정보수집 및 기획 능력은 유지했으나, 작전을 펼칠 인력은 크게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문상호 국군정보사령관. 연합뉴스

높은 수준의 기밀로 분류되는 특수정보(SI)를 다루면서 외부에 활동이 드러나지 않는 폐쇄적인 조직 특성도 정보사를 계엄 정국의 한복판에 서게 했다는 분석이다. 계엄에 투입됐던 특전사령부나 수도방위사령부는 합동참모본부나 방첩사 등에서 통제하므로 움직임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 반면 정보사는 국방정보본부의 통제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방정보본부가 정보사의 움직임을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상당하다. 군 소식통은 “정보사가 군사기밀을 내세우면 외부에선 정보사 활동을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SI를 비롯해 정보사의 조직·활동 등은 군사기밀 3급 이상 기밀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계엄 국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존재가 정보사가 계엄에 엮이게 된 직접적인 계기라는 지적도 있다. 정보사의 임무와 활동 영역, 세부 편제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노 전 사령관은 문상호 정보사령관을 비롯한 정보사 간부와 예하 부대 병력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으리라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소수 정예 특수부대라는 특성 탓에 예비역, 현역을 가리지 않고 부대원 간 친밀한 인간적인 관계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 예비역 장군은 “아무래도 (노씨가) 자신이 잘 아는 부대를 활용하려고 했지 않았겠느냐. 노씨가 없었다면 정보사가 전면에 등장했을 것인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박근혜정부 당시 정보사령관을 지낸 노 전 사령관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비선’으로 이번 계엄을 기획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 이틀 전인 1일과 계엄 당일인 3일 경기도 한 햄버거 패스트푸드점에서 전·현직 군 관계자들과 계엄을 사전 모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2018년 성추행 사건으로 불명예 전역한 뒤 자택에 점집을 차려 역술인으로 활동해왔던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전후 김 전 장관과 여러 차례 통화한 것을 단서로 민간인인 노 전 사령관이 이번 계엄 기획에 깊숙이 관여한 정황을 포착했다.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건물 앞 조형물 모습. 뉴시스

정보사가 비상계엄에 연루되면서 지금까지 기밀로 분류됐던 정보사 정보들이 노출되고 있다. 정보사 내 보직명과 부대명, 간부의 신상 등이 외부에 계속 드러나고 있다. 10일 생중계된 국회 국방위원회의 긴급 현안 질의에서도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질의응답 과정에서 정보사 소속 요원의 실명 등이 낱낱이 노출됐다. 판교 신도시 인근 정보사 예하 부대도 정치권 등에서 거론되면서 위치가 노출됐다. 민간시설로 위장한 정보사 예하 부대로 추정된 시설은 경기 성남시 청계산 일대에 있다. 성남 금토공공주택지구 공사현장 사무실에서 차도로 수㎞ 떨어져 있는데, 금토지구 현장에서 외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막다른 길에 이르면 두꺼운 콘크리트 방호벽과 함께 국가 연구·보안 시설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있다. ‘○○○○○’이라는 회사 이름으로 불린다. 검은색 복장의 경비인력들은 시설 안쪽에서 출입이 가능한 차량과 인원들만 들여보내는 식으로 보안을 유지한다.

 

성남 판교 정보사 예하 부대 추정 시설로 가는 청계산 기슭. 연합뉴스

야당이 정보사령부의 HID 요원 대기를 두고 “북한 도발을 유도하기 위한 정황”이라고 주장하면서 특수임무유공자회 측에선 당혹스럽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아직 사실관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면서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어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설이 나오는데, 상황이 계속 안 좋은 방향으로 가서 혼란스럽다”고 했다. 전국에 3000여명의 회원을 둔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다가 산화한 대원들을 추모하고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6월 판교 충혼탑 앞에서 특수임무 전사자 합동위령제를 거행해왔다.


박수찬 기자, 성남=오상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