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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1375일로 끝난 정치인생…‘칼잡이’→첫 0선 대통령→계엄 후 파면

기사입력 2025-04-04 11:36:22
기사수정 2025-04-04 13: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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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짧은 정치 인생이 끝났다. 2021년 6월29일 대권 도전을 밝힌 지 1375일 만이다. 윤 전 대통령은 평생 검사로만 살다 처음 대통령에 도전해 당선된, 기존 정치 문법에 맞지 않았던 인물이었다. 야당과의 갈등 속에 ‘비상계엄’ 선포라는 ‘악수’가 발목을 잡았다. 1987년 5년 단임제 실시 이후 임기를 채우지 못한 두번째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긴급담화를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6년 검사 후 2022년 ‘별의 순간’

 


4일 정치권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서울대 법대 79학번으로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9수’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1994년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한 윤 대통령은 검찰이 됐다. 3년만 경험해보자고 시작한 검찰생활은 26년이나 이어졌다. 

 

초반에는 평범한 이력이었던 그는 점차 굵직굵직한 사건에 투입되며 ‘칼잡이’로 명성을 쌓았다. SK 분식회계 사건과 불법 대선자금 사건, 현대차그룹 비리 사건과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BBK 특검, 저축은행 불법 대출 사건, 국정원 댓글 사건. 박근혜·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국정농단 사건 등에 이름을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7월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준 뒤 이동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정권과는 대립각을 세워 ‘강골 검사’로 인식됐다.

 

2013년 박근혜정부 당시 증인 자격으로 국정감사장에 나온 그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맡았을 때 수사 외압이 심각했다고 폭로했다. “사람(채동욱 전 검찰청장)에게 충성하는 것이냐”는 여당 질타에 답한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그의 대표 어록으로 남았다.

 


문재인정부에서 검찰총장에 임명됐으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해 고강도 수사에 나서면서 다시 강골 기질을 드러냈다. 

특히 조 전 장관 후임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추진하자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며 정면 충돌했다. 

 

윤 대통령은 2021년 3월 검찰총장직에서 사퇴했다. 3개월 남짓 시간을 가진 윤 대통령은 ‘6·29 선언’을 통해 정계에 발을 들였다. 대선 운동 기간 ‘어퍼컷’ 세레모니로 인상을 남긴 그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정치 경력 없던 대통령의 패착…결국 탄핵

윤석열 대통령이 2022년 5월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뒤 차량으로 이동하며 환호하는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5월10일 대통령에 취임하며 “자유, 인권, 공정, 연대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고 존경받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이 된 뒤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용산으로 옮겼다. 한·미·일 ‘3국 공조’를 새 단계로 격상시키는 등 외교 행보에 힘썼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계엄 선포가 있기 전까지 약 2년7개월 간 국정 운영은 순탄하지 않았다. 

 


‘여소야대’ 구도는 넘기 힘든 벽이었다. 여야 합의 실패, 거대 야당의 단독 처리,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라는 악순환이 계속됐다. 노란봉투법, 방송 3법, 양곡관리법, 채상병특검법 등이 대표적 사례다. 윤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이 됐다.

 

노동·연금·교육·의료 4대 개혁도 추진했으나 진통이 많았다.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한 의정 갈등은 아직도 봉합되지 않고 진행 중이다. 연금 개혁은 지난달 여야 합의로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3%’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됐다. 

 

소통 부족이라는 비판도 따라다녔다. 출근길 직접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도어스테핑’도 시도했으나 6개월 만에 중단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2024년 12월3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 담을 넘고 있다. 뉴스1

여소야대 정국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윤 대통령의 선택은 ‘계엄’이었다. 

 

지난해 12월3일 오후 10시28분 그는 “종북 세력 척결과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요구안이 가결되면서 계엄은 약 2시간30분 만에 끝났다. 

 

국회는 즉각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한차례 무산된 탄핵안은 12월14일 가결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월25일 열린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기일에 출석해 최종의견을 진술하고 있다. 뉴스1

헌법재판소는 1월14일 1차 변론을 시작으로, 2월25일까지 11차 변론을 진행했다. 

 

마지막 변론에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의 목적은 망국적 위기 상황을 알리고 헌법제정권력인 주권자들께서 나서주시기를 호소하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항변했다. 

 

헌재의 결정은 파면이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