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보기메뉴 보기 검색

아이, 우서라 [詩의 뜨락]

입력 : 2025-05-03 06:00:00
수정 : 2025-05-01 20:24:51
폰트 크게 폰트 작게
박철

나중은 없을 텐데

 

나중은

 

젊은 날 누군가를 사랑하여

 

길고 긴 쓰린 밤으로 배운 하나

 

나중은 없다는 것 

 

 

 

그래도 

 

그래도 혹시나 해서

 

치매 앓는 엄마 곁에 붙어

 

제 절로 떨리는 노구의 메마른 손을 잡고

 

엄마 우리 한 번만 다시 만나

 

응?

 

하고 물으니

 

그래, 하고 일생처럼 답을 하고서

 

아이, 우서라

 

병아리가 활짝 날개를 펴듯 웃으며

 

구순의 소녀가 잠시 노란 꽃으로 피어난다

 

 

 

-시집 ‘대지의 있는 힘’(문학동네) 수록

 

●박철

△1960년 서울 출생. 1987년 ‘창작과 비평’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 을’, ‘새의 전부’ 등 발표. 천상병시문학상, 백석문학상, 노작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