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회에 속하도록 노력해보세요. 저도 바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다른 사람들 불편하게 할까 봐 신경이 쓰이지만 발전해 나가는 것을 느껴서 보람되게 생각합니다.”
지난 26일 경기 용인시 기흥구 수원CC에서 만난 발달장애 프로골퍼 이승민(28·하나금융그룹)은 자신과 비슷한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향해 이 같은 응원 메시지를 보냈다. 이승민이 쑥스러운 듯 어머니 박지애씨를 쳐다보자 박씨는 “그래, 승민이 하고 싶은 말 다 해”라며 아들 어깨를 토닥였다.
이승민은 미국에 살던 2살 때부터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고 결국 장애 판정을 받았다. 박씨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가족들은 증상이 심해지는 아이를 보며 체육을 통해 사회성을 키워주기로 결정했다. “아이스하키를 시켰어요. 승민이도 재미있게 배웠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생겼어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힘은 세졌고, 승민이가 다치는 일도 잦아졌어요. 단체 스포츠라 소통에 어려움도 있었고요. 결국 승민이가 좋아하는 운동을 시켜보기로 했죠.”
이승민은 어린 시절부터 골프를 즐겨 봤다. 가족들이 TV채널을 애니메이션으로 틀어 놓으면 골프 경기 채널로 바꿔놓을 정도였다. “파란 잔디가 좋아요. 타이거 우즈 선수가 골프 치는 게 멋져요.” 이승민이 골프를 좋아했던 이유다. 박씨는 이승민이 골프를 치면서 발달장애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증상도 완화됐다고 했다.
유년기를 미국에서 보낸 이승민은 골프선수가 되겠다며 한국으로 돌아와 경기 안양에 있는 신성중에 입학했고, 신성고 2학년 때 세미프로 자격을 획득했다. 이승민은 당시 “하루 오백 개씩, 10시간을 치며 훈련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회원 테스트에서 5차례나 탈락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2017년 투어프로에 입회했고 2023시즌 데뷔전을 치르며 어엿한 프로골퍼가 됐다. “훈련은 힘들어요. 경기는 재미있어요. 경기 나가기 전 ‘정신을 차리자’고 합니다. 공은 40초 이내에 쳐야 돼요. 피해를 주면 안 돼요.”
이승민은 장애인 골프 세계랭킹 2위에 올라있는 등 정상급 실력을 갖췄다.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에서 100위권 안팎의 성적을 내고 있다. 이승민은 지난달 우리금융챔피언십에서 사고를 칠 뻔했다. 좋아하는 동생 임성재(27·CJ)가 컷탈락할 만큼 까다로웠던 이 대회에서 이승민은 2라운드까지 4위에 오르며 대이변을 예고했다.
“숙소에 와서 중계를 보는데 이승민 이름이 위에 있어서 내 이름인가 의심했어요. 내 이름이 맞았어요. ‘나도 우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3라운드부터 잘 안 됐어요. 긴장하지 않았는데 물을 마실 때 손이 떨렸대요.” 이승민은 이 대회를 22위로 마쳤지만 자신감을 얻었다. “‘(나도)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생각했어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승민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도 쏟아진다.
어머니 박씨는 “비슷한 상황의 가정에서 소셜미디어(SNS) 메시지가 많이 와요. 우리를 보면서 힘을 얻는대요. 그런 분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죠. 장애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힘든지 저는 잘 아니까, 저희랑 승민이가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승민이도 더 열심히 해야 하고요.”
어머니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이승민에게 행복한 순간이 언제인지 물었다. 잇몸이 다 보일 만큼 환하게 웃던 이승민은 “너무 뻔한 질문인데”라며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말을 이어갔다. “100가지도 넘어요. 잘 들어보세요. 친구들이 잘 지내냐고 연락해 줄 때, 대회에 나갈 때, 갤러리들이 ‘승민이 파이팅’이라고 외쳐줄 때, 공을 잘 쳤을 때, 또 ‘향기’(반려묘) 간식 줄 때… 정말 복잡한 이야기죠.”
행복한 일이 많은 골퍼 이승민에게 이루고 싶은 것도 산더미다. “KPGA 톱 10에 들고 싶고, 비장애인 대회에서 우승도 해보고 싶어요. 2032 브리즈번 패럴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고 싶어요. 마스터스 마지막 라운드 18번 홀에서 퍼팅도 해보고 싶어요. 파3 콘테스트에는 저를 도와주신 이상현 전 캘러웨이 대표님을 초대할래요. 꿈이 많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