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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일본 문화 즐기면 매국노?"…또 불붙은 ‘왜색 논쟁’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입력 : 2025-08-14 05:38:14
수정 : 2025-08-14 05:3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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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광복절 당일 동두천서 일본풍 축제 논란
LG트윈스, ‘귀멸의 칼날’ 시구 계획했다 취소
“3·1절, 광복절 땐 일본 문화 소비 자제해야”
일각에선 “매국노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 문제”

“적어도 3·1절과 광복절만큼은 역사와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으로 삼으면 어떨까요.”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창의융합학부)는 13일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오는 8월15일 광복 80주년을 앞두고 곳곳에서 일고 있는 ‘왜색(倭色)’ 논쟁에 대해 “참 어려운 문제”라며 이같이 밝혔다.

 

서 교수는 “당연히 일본 문화를 소비할 수 있다. 일본 여행도 갈 수 있고 한국에서 일본풍 축제를 개최할 수 있다”면서 “모두 개인의 자유지만, 이 시기에 우리 스스로 굳이 드러내면서 일본 문화를 소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국민 정서와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왜색 논쟁은 매년 3·1절, 광복절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불거진다. 특히 공휴일이 주말과 맞물릴 경우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번진다. ‘역사와 문화·관광은 별개’라는 주장과 ‘이날만큼은 자제하자’는 의견이 항상 맞부딪힌다.

‘나츠마츠리 여름축제’ 홍보 포스터. 니지모리 스튜디오 홈페이지 캡처

올해엔 광복절 당일 경기 동두천시에서 일본식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이 알려져 도마 위에 올랐다.

 

일본 테마마을 ‘니지모리 스튜디오’는 지난달 26일부터 오는 17일까지 동두천시에서 ‘나츠마츠리 여름축제’를 연다. 니지모리 스튜디오는 과거 드라마·영화 촬영을 위해 조성된 세트장을 테마파크로 활용 중인 상업시설이다. 일본식 마을 풍경을 그대로 재연하고, 체험형 콘텐츠를 선보이며 관광객의 발길이 늘고 있는 곳이다.

 

문제는 이번 행사 기간에 광복절이 포함됐다는데, 광복절 당일에도 사무라이 결투 공연과 기모노 콘테스트 등의 행사가 계획됐다는 점이었다. 언론과 누리꾼들의 질타가 이어지자 주최 측은 광복절 당일에는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안중근 장군의 동양평화론을 존중한다며 ‘광복 축하 평화 선언문 낭독’을 프로그램에 포함했다. 또 태극기를 들고 방문하거나 전통 한복을 착용할 경우 입장 무료 혜택을 주겠다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프로야구 구단 LG트윈스도 최근 비슷한 논란으로 곤욕을 치렀다. 지난 9일 서울 잠실야구장 홈경기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의 주인공 탄지로와 네즈코를 시구자로 세우려다 팬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취소했다. 

 

광복절을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일본 애니메이션일 뿐만 아니라 ‘우익’ 논란에 휩싸인 ‘귀멸의 칼날’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 팬들의 반감을 자극했다. 이 애니메이션은 일본 제국주의 팽창기인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주인공이 착용한 귀걸이가 욱일기 문양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며 전체주의를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휩싸였다. 비록 시구는 취소됐지만, 이번 시리즈는 광복절 일주일 후인 오는 22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전날 예매 관객 30만명을 넘기며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 포스터. 애니맥스브로드캐스팅코리아 제공

30년 넘게 LG트윈스를 응원하고 있다는 김모(40)씨는 “왜 하필 광복절을 코앞에 둔 시점에 구단이 이런 논란을 자초했는지 모르겠다”며 “광복절만큼은 국가 전체가 단합된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최근 일본풍 축제 개최 사례도 그렇고, 일본인들이 우리를 얼마나 우습게 보겠나”라고 우려했다.

 

다만 이 같은 사회 분위기에 반감을 갖는 시민들도 있다. 역사적 문제의식을 갖는 것과 일본 문화를 소비하는 것은 별개의 시선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 일본 문화와 제품 음식을 즐기면서 특정 시기에만 ‘노 재팬’을 외치는 건 이중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귀멸의 칼날’ 시리즈의 팬이라는 최모(34)씨는 “광복절 당일도 아닌데 예정됐던 시구까지 취소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며 “일본 문화를 즐기면서 충분히 3·1절과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매국노’로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는 다소 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