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물을 찍어서 획을 그을 때는 방아쇠를 당겨서 총알을 내보낼 때처럼 몸의 힘이 종이 위로 뻗쳐 나갔다.’ (소설 하얼빈 中)
광복 80주년을 맞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추천 도서는 소설 ‘하얼빈’이었습니다. 김 지사는 1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쇼츠 영상에서 “오늘 우리는 안중근 의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며, 하얼빈을 한번 읽어보면 어떨까 일독을 권한다”고 제안합니다.
◆ 안중근에 꽂힌 광복 80주년…“가난, 청춘, 결연한 정신”
하얼빈은 소설 ‘칼의 노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언론인 출신 김훈 작가의 작품입니다. ‘독립운동 영웅’인 안 의사의 짧고 강렬했던 생애를 소설에 담은 수작입니다. 작가가 안 의사의 삶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글로 함축하기 위해 오랜 시간을 들여 ‘인간 안중근’을 연구한 뒤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 지사는 “사실 이 책을 2년 반 전에 읽었는데 최근 다시 읽었다”며 화두를 던집니다. 이어 김훈 작가가 책 말미에서 밝힌 집필 의도를 인용합니다.
‘나는 안중근의 대의보다 실탄 여섯 발과 여비 백 루블을 지니고 하얼빈으로 향하는 그의 가난과 청춘과 그의 살아있는 몸에 관하여 말하려 했다’는 문장을 소개했습니다. 이를 두고 “정말 비장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또 소설에 등장하는 안 의사의 여순감옥 일화를 언급하며, 글씨를 쓰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안 의사의 결연한 정신을 얘기합니다. 김 지사는 “안중근 의사의 글씨는 힘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짧은 영상에서 김 지사는 현재 남아있는 안 의사의 60점 유묵(붓글씨) 가운데 두 점을 언급합니다. 바로 ‘독립(獨立)’과 ‘장탄일성 선조일본(長歎一聲 先弔日本)’입니다. 특히 후자는 ‘큰 소리로 길게 탄식하며 일본이 망함을 미리 조문하노라’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흔들림 없던 안 의사의 기개와 역사관, 세계관이 오롯이 담긴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두 작품 모두 항일 독립의 의지를 직접 표현한, 몇 안 되는 귀중한 것들입니다. 31점의 유묵을 정부가 보물로 지정했는데, 두 유묵은 국보급으로 평가받는다고 도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전날 경기도는 이 중 유묵 ‘장탄일성 선조일본’의 국내 반환에 성공했다고 밝혔습니다. 안 의사가 여순감옥 등을 관장하던 일본제국 관동도독부 고위 관료에게 건넨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관료의 후손이 일본에서 보관해 오던 것을 국내 한 민간 탐사팀이 발견했고, 귀환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올해 초부터 경기도가 힘을 보탰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공개된 바 없는 이 유묵은 민간 탐사팀이 회수해 국내 모처에서 보관 중입니다.
도는 안 의사가 뤼순 감옥에서 써서 간수에게 건넨 유묵 ‘독립’도 국내로 들여오기 위해 소장자와 협상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경기도와 민간 탐사팀, 광복회 경기도지부 등이 우선 구매 협약서를 확보한 상태라고 합니다. 이 유묵은 현재 교토 류코쿠대학이 일본인 간수의 후손으로부터 위탁받아 보관 중입니다. 국내에서 몇 차례 전시된 바 있으나 아직 귀환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 “역사의 뿌리 세우고 독립 정신 되살리는 여정”
김 지사는 이날 수원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80주년 경축식 경축사에서 “지난 몇 년, 역사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광복 80년 경기도는 우리 역사의 뿌리를 굳건히 세우고 독립의 정신을 온전히 되살리는 여정을 시작했다”며 “그 여정의 이정표 중 하나가 바로 안중근 의사가 남기신 ‘독립’과 ‘장탄일성 선조일본’, 두 유묵”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장탄일성 선조일본’을 국내로 들여왔고, ‘독립’ 또한 조국의 품으로 귀환시킬 것”이라며 “대한민국이 마땅히 지녀야 할 위대한 정신의 귀환을 맞이한다는 심정으로 유묵의 완전한 확보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 자리에선 향후 경기도가 안 의사의 고향인 황해도 해주와 가까운 DMZ 지역에 ‘안중근평화센터’를 조성해 기념사업과 유묵 발굴·수집·전시 등을 할 것이란 계획도 밝힙니다. 현재 후보지로는 임진각 일원이 거론됩니다.
김 지사는 “확보한 유묵을 안중근 평화센터에 전시해 뜨거운 피로 써 내려 간 ‘독립의 영혼’을 모든 국민과 함께 기리고, ‘동양평화론’을 비롯한 안중근 의사의 뜻과 정신도 올곧게 이어가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독립유공자 유족, 도민 등 약 1000명이 참석했으며 키르기스스탄·카자흐스탄·중국에서 거주 중인 의병장 허위, 교육학자 계봉우, 의열단원 이동화의 후손 7명도 함께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