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와의 관계가 ‘혈맹’ 수준으로 강화되고 있다.
탄약과 병력을 제공하는 것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개발한 중화기를 제공하는 수준으로 발전하는 모양새다. 러시아는 전쟁에 필요한 병력과 장비를 제공받고, 북한은 새로운 국방과학기술과 신무기를 확보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거의 모든 가용 수단을 동원해 대규모 현대전을 치르는 경험을 얻음으로써 한반도 유사시 대응 능력을 높일 수 있게 됐다. 러시아와의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효과도 있다.
북한의 군사적 능력과 외교적 입지가 한층 강해질 조짐이 뚜렷해지면서 한국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우크라 “北, 러시아에 장갑차 등 제공할 것”
우크라이나 국방정보국에 따르면, 키릴로 부다노우 국장은 지난 14일 일본 재팬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가까운 미래에 러시아에 추가 병력을 보낼 계획”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부다노우 국장은 “북한은 6000명의 군인과 M2010 전차(천마-D), BTR-80 장갑차 등 북한 장비 50~100대를 이전할 계획이며, 표면적으로는 공병 작업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장비들이 북한군 승무원과 함께 파견되면 우크라이나 전선에 곧바로 투입될 수 있다.
앞서 지난 6월 평양을 방문한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북한이 공병 병력과 군사 건설 인력 6000명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부다노우 국장의 발언은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과 더불어 중화기를 지속적으로 보내는 것과 맞물려 주목된다.
북한은 올해 초까지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148발 이상, 170㎜ 곡산형 자주포 120대 이상을 러시아에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된 KN-23 중 일부는 최근에 생산된 징후가 있으며, 자주포는 일부 물량이 러시아군 교육용으로 쓰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240㎜ 다연장로켓 등도 우크라이나에서 식별된 바 있다.
부다노우 국장이 지목한 M2010는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부다노우 국장은 M2010을 전차로 설명했으나, 실제로는 장갑차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자체 개발한 8륜 장갑차인 M2010은 옛소련 BTR‑80A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북한 공장에서 중국·러시아의 지원 없이 독자 개발을 시도한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된다.
중량은 14t, 승무원 3명에 보병 7~8명이 탑승하며 14.5㎜와 7.62㎜ 기관총을 탑재한다.
122㎜ 주포를 탑재한 형태와 대전차미사일 8연장 발사기를 장착한 파생형이 있다. 경제적이고 생산이 용이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데 유리하다는 평가다.
북한이 지난 2020년에 처음 공개한 신형 전차일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5월 2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국방과학원 창립 60주년을 맞아 축하 방문을 했을 때, 신형 전차 사진과 그 하단에 ‘천마-XX’ 라는 글씨가 포착됐다. 기존에 북한군이 쓰던 천마호 전차를 거듭 개량하며 성능을 높이고 있다는 징후로 해석됐다.
부다노우 국장의 언급대로라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될 북한의 기갑장비는 수량이 적어서 전쟁의 판도에 큰 변화를 일으키기는 어렵다. 다만 러시아군의 부담을 덜어주고 전선의 러시아군 또는 북한군 부대를 교대할 수 있게 해준다.
북한은 무기를 실전에서 시험하고 교리를 개선할 기회를 얻는다. 전쟁에서 결정적인 변수는 아니지만, 양국에 전술적 이점은 제공한다.
북한이 제공하는 막대한 양의 탄약은 기갑장비보다 훨씬 위력적이다. 북한은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군을 상대로 화력전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군이 필요로 하는 122㎜와 152㎜ 탄약의 40%를 공급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24시간 내내 탄약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소모전을 뒷받침할 만큼 빠르게 충당할 수 없는 탄약과 기타 물자를 러시아에 제공하고 있다.
부다노우 국장은 “문제는 엄청난 양의 공급이 유입된다는 점”이라며 “유엔의 수많은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이 상당한 군사적 비축량을 보유하고 있고 군비 생산 능력이 강력하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북한의 실험장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북한의 역학관계를 근본적으로 뒤바꿨다.
1948년 이래로 양국 관계는 러시아가 우위에 있었다. 현대식 무기와 자원 공급을 러시아에 의존했던 북한은 일방적으로 지원을 받는 관계였다.
반면 러시아는 언제든 북한을 포기할 수 있었다. 중·소 국경분쟁 시절의 옛소련과 소련 붕괴 직후의 러시아는 북한과 거리를 뒀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양국 관계는 상호적 성격으로 바뀌었다. 우크라이나군의 거센 저항으로 막대한 사상자를 낸 러시아는 숙련된 북한군의 지원이 필요했다.
북한군은 러시아 쿠르스크를 탈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이는 우크라이나군의 반격 계획을 무력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북한은 무기와 인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러시아 군사 기술의 이전, 식량과 에너지 접근권, 국제 무대에서 러시아의 정치적 지지 등을 얻었다.
부다노우 국장은 “러시아는 북한군에 전투 드론과 방공 체계 사용법을 훈련시키고 이란이 개발한 샤헤드 자폭 드론의 러시아식 버전(게란 드론)을 북한에서 생산하는 것을 돕기 위해 군사 전문가를 파견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의 드론 산업이 대량생산체제로 전환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러시아는 이미 알라부가 특별경제구역에 게란 자폭드론 공장을 건설, 대량생산을 진행중이다. 해당 공장은 2023년 2738대의 게란 드론을 생산했고, 지난해에는 5760대 이상의 드론을 만들었다. 이같은 노하우와 부품 공급망이 북한에 제공되면 북한 드론 산업은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
러시아는 북한에 첨단 전자전 시스템과 방공 시스템을 제공했으며, 방공 장비는 평양 방어에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기존에 개발한 무기의 현대화도 포함된다. 북한산 KN-23 미사일은 초기엔 정확도가 매우 낮았지만, 러시아 기술자들이 개량작업을 거친 뒤로는 오차가 크게 줄어들었고, 요격회피능력도 구현되고 있다.
북한이 새롭게 투입할 장비들도 러시아 기술자들에 의해 현대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 북한군이 쓸 무기의 신뢰성과 파괴력을 높인다.
북한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거대한 전쟁터에서 거의 모든 재래식 무기체계를 사용해 전쟁을 치른 경험이다.
드론과 인공지능(AI) 같은 첨단 기술에 전자전·보병·기갑·포병 등의 다양한 병과와 기술을 융합해서 전투를 벌이는, 새로운 개념의 지상전투다.
이같은 경험을 지닌 국가는 북한 외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뿐이다.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북한은 더욱 강해질 기회를 잡은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실전을 겪은 북한군은 본토로 돌아와 자신들의 노하우를 전수할 전망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0일 국가표창수여식 참석차 귀국한 해외작전부대 주요 지휘관을 만났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견된 북한군 부대를 이끈 사람들이다.
이 자리에는 △김영복 인민군 총참모부 제1부총참모장(상장) △리창호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겸 정찰총국장(상장) △차용범 국방성 제1부상 겸 종합국장(중장) △고희명 제11군단 1저격병여단 여단장(소장) △조경철 제11군단 1저격병여단 정치위원(대좌) △김명철 총참모부 작전국 부국장(중장) △신금철 총참모부 작전국 처장(소장)이 참석했다.
김영복, 리창호, 신금철은 지난 5월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리 80주년 열병식에 북한군 대표로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포옹·악수를 했다.
이들은 향후 북한으로 복귀해서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경험을 토대로 한반도 유사시 작전계획을 현대전에 맞게 고치고, 무기체계와 전술을 혁신하는데 앞장설 전망이다.
그렇게 재편된 북한군의 총구는 남쪽을 향할 가능성이 크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호전부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드론 작전에 이르는 모든 형태의 지상전을 현대적 기술과 관점에서 치른 경험을 지닌 군대를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한국군은 국방혁신을 한창 추진해야 할 시기에 12·3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을 겪었다. 그 사이에 북한군은 전쟁에서 피흘리며 얻은 교훈을 토대로 한국군보다 앞서나갈 기회를 얻었다. 이는 남북 군사력 균형에도 영향을 미친다.
모스크바와 평양의 협력이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위협이 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