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위협에 맞선 한·미 핵확장 억제력의 신뢰성 담보 문제가 한·미동맹의 새로운 도전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지난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 고위 관리들의 주한미군 감축·역할 변경에 대한 언급이 잦아졌다. 이에 한국 정부가 확장억제력에 대한 미국의 방위 공약을 재확인받는 데 이어 지금보다 더욱 강화된 형태의 확장억제력을 구축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25일(현지시간) 이재명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은 한국에 대한 지속적인 확장억제력 제공과 강화에 대한 양국 정상의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 핵전력 강화에 따른 확장억제 심화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확장억제 수준에 버금가는 한·미 핵협의그룹(NCG) 운용에 도널드 트럼프·이재명 대통령이 얼마나 진정성을 보일지는 불투명하다. NCG는 양국 모두 전임 정부인 바이든 행정부와 윤석열정부 간 회담에서 도입됐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양국 정부 모두 전임 정부 치적 지우기에 적극적인 만큼, NCG의 장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관측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대화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담판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NCG 운용에 많은 예산과 노력이 투입되는 만큼 이를 유지하기 보다, 대북 대화의 지렛대로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재명정부는 9·19군사합의 복원 등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과 신뢰회복 조치를 잇따라 발표했다. 더나아가 한·미연합훈련 조정 및 축소, 연기 가능성도 검토 중인데, 대량응징보복 개념이 담긴 확장억제에 어느 정도 진정성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이번 8·25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NCG 재개와 강화에 대한 양측 공감대가 어느 정도의 명확한 언어로 포함될지가 관건이며, 이를 통해 양국 정상의 의지가 평가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을 상대로 한 북한의 변화 없는 적대적 태도와 조롱적 언사에도 불구, 이재명정부의 잇따른 유화책이 여론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은 북한의 전쟁 수행능력과 재래식 전력에서 한국이 우위에 있다는 국민적 믿음이 있어서다. 그러나 북핵에 대한 분명한 방위 공약과 대응 방안이 없다면, 여론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고, 이는 곧 이재명정부 대북정책도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확장억제에 대한 미정부의 의지를 재확인하는 것은 향후 정부의 대북정책 여지를 넓히는 전제가 될 수 있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대 불가피···확장 억제력 담보는 필수
동북아 안보 환경 변화와 미·중 패권 경쟁 여파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는 불가피하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군사령관은 8일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서 가진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75년 전 한국은 지금과 매우 다르고 세계 균형 자체가 많이 바뀌었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확대와 관련) 병력 등 숫자보다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주한미군의 변화 필요성을 언급하고, 현재 수준의 대북 방어 역량이 유지된다면 병력 감축도 가능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미 주한미군의 사실상 유일한 전투부대인 스트라이커여단 전투단 병력 4500여명 감축 전망과 대북 방어는 한국군이, 지원 형태로 역할 변경이 이뤄진 주한미군은 유사시 대만·남중국해 등의 중국 견제를 담당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분석도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는 자연스럽게 북 군사 도발 및 핵 대응에 대한 미군의 한반도 방어 능력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전력 약화는 곧바로 북한의 오판을 불러와 한반도 안보 상황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북한은 통미봉남 의도를 노골화하고 있다. 북·러 군사동맹 복원으로 러시아의 안전보장 약속을 받은 만큼 미국과의 핵담판을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체제 유지를 도모하겠다는 의도다. 김정은 위원장은 15일 광복 80주년 경축행사 연설에서 “북·러 단결의 힘은 무궁하다”며 북·러 동맹을 한껏 치켜세웠다. 전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서울의 희망은 어리석은 꿈에 불과하다' 제목의 담화에서 우리 정부의 대화 노력을 ‘허망한 개꿈’이라고 조롱했지만, 미국과의 대화 가능성은 일단 열어뒀다.
북핵 맞대응 수단이 없는 한국으로서는 미군이 약속한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를 더욱 높이고, 담보 받는 방향으로 한·미 동맹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전제로 한 한·미 양국의 동맹 현대화 논의에 확장억제력 강화에 대한 논의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미, 2006년 북 첫 핵실험후 확장억제 논의 본격화
한·미는 2006년 북한 첫 핵실험 이후 확장억제 강화를 위한 논의를 본격화했다. 핵우산 방어 개념이 처음 도입된 것은 1978년 제11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다. 지미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하자 한국이 대한 방위공약 강화를 요구한 결과다.
이후 한·미 정상회담과 SCM에서는 통상적 수준의 핵우산 제공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지를 담은 문구가 포함됐지만 2006년 북한이 첫 핵실험을 감행하자 그해 워싱턴에서 열렸던 38차 SCM에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과 윤광웅 국방 장관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통한 확장억제를 처음 명시했다.
이후 한·미 동맹의 확장억제 개념은 한반도 안보상황과 북한의 핵위협 증대에 맞대응하면서 계속 심화했다. 북한 핵위협 뿐만 아니라 재래식 전력과 미사일 위협에도 미국의 확장억제를 제공하도록 확대됐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열린 45차 SCM에서 ‘북한의 핵·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비한 한·미 맞춤형 억제전략(TDS)’이 반영됐다. 또 2009년 41차 SCM 공동성명에서 양국 국방장관은 “미국의 핵우산, 미사일 방어, 비핵 재래식 전력을 포함한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 제공”을 최초 명시했다. 2018년 54차 SCM에서도 미국은 기존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을 포함하는 동시에 ‘진전된 비핵능력’도 한국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한·미 양국은 회담을 통한 확장억제 공약 강화에 그치지 않고, 이를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실무협의체를 구성해 실질적인 확장억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 2010년 42차 SCM 합의에 따라 최초 확장억제 협의체인 확장억제정책위원회(EDPC)를 신설하고, 2012년 44차 SCM 합의에 따라 미사일대응능력위원회(CMCC)도 새롭게 만들었다. 양국은 또 2014년 46차 SCM 합의를 통해 2015년 4월부로 EDPC와 CMCC를 통합한 억제전략위원회(DSC)를 통합국방협의체(KIDD) 산하 기구로 출범시켰다. 2016년 10월 국방·외교 차관급 협의체인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도 신설했다.
특히 2022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워싱턴 선언을 통해 미국의 확장억제 제공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밝혔고, 이는 미국이 동맹국에 대한 확장억제를 약속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NCG 신설과 운용은 미 핵정책에 대한 한국군의 개입 토대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크고, 기존 미국의 다른 확장억제와 비교해볼 때도 신뢰성과 효용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같은 파격적인 확장억제는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와 관련이 깊다.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이후 2017년 10년 동안 여섯 차례 핵실험을 하고, 2017년 11월2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 발사 후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북한 핵무력 강화에 한국인의 불안감도 커지고, 자체 핵무장이라는 여론이 한국 내에서 불거졌다. 나토식 핵공유, 전술핵무기 재배치,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한 핵 잠재력 확보 등 다양한 자구책이 쏟아졌다.
미국 정부로서는 핵비확산 체제를 유지하면서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방안이 필요했다. 확장억제를 강화하고, 양국 군이 핵 및 전략 기획을 토의하고, 비확산체제에 대한 북한 위협을 관리하는 새로운 협의체인 NCG 설립을 합의했다.
◆NCG 10월 개최 조율 중···양국 정상 의지 보여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가 강조되고, 이재명정부 출범이후 한·미 동맹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커지면서 NCG 유지와 운용에 대한 의구심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NCG 회의는 지난 1월 4차 회의를 마지막으로 현재 열리지 않고 있다. 또 4차 회의에서 함께 하기로 했던 1차 NCG TTX(도상연습)는 실시되지 않았다. NCG TTX는 북핵에 대응해 양국 군 관계자들이 실시하는 토의식 도상연습이다. 양국 정부는 상반기 중 개최를 약속했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한 1월 20일 이후 열리지 않고 있다.
안보 소식통 등에 따르면 양국 정부는 10월 개최를 염두에 두고 현재 일정을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0월 개최가 확정된다면 트럼프·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첫 NCG회의가 된다. 이번 5차 회의가 열린다면 TTX도 함께 실시되는지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통화에서 “재래식 전력은 북한을 압도한다. 문제는 핵이다. 확장억제를 제도화하고, (과거) 공약을 계속 지키도록 하느냐가 관건”이라며 “NCG를 통해 확장억제를 제도화해왔고, 올해도 어떤 것을 해야 할 것인지 등 한·미 양국이 이미 합의했던 계획들이 계속 이행되는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제대로 이행이 되지 않으면 (한·미 동맹의) 도전이 된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장기적인 차원에서) 한·미동맹은 핵동맹으로 가야 한다. 확장억제를 더욱 강화해서 한·미가 연합해 핵작전계획을 공유해야 한다”며 “재래식 전쟁의 경우 책임과 비용은 한국이 책임지더라도, 핵은 미국이 보장해 줄 것을 (우리가) 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