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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만명 혜택 받는다는데”…나는 왜 대상이 아닐까?

입력 : 2025-09-30 05:00:00
수정 : 2025-09-30 06: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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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만명 ‘신용사면’ 서민·소상공인 숨통 트일까…도덕적 해이 우려는?

오늘(30일)부터 역대 최대 규모의 ‘신용사면’ 조치가 시행된다.

 

신용사면은 민생경제 회복과 금융 포용 강화라는 순기능과 신용평가 체계 왜곡·도덕적 해이라는 부작용 가능성이 맞서는 전형적인 ‘양날의 칼’이다. 게티이미지

대상자는 무려 370만명. 코로나19 이후 빚을 갚지 못해 ‘신용 낙인’을 안고 살아온 서민과 소상공인에게는 오랜만에 찾아온 숨통 트이는 기회다.

 

하지만 신용점수의 급격한 개선이 ‘과잉 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된다.

 

◆370만명 구제…“연말까지 빚 갚으면 신용회복”

 

금융위원회는 29일 추석 연휴를 앞두고 민생경제 지원책의 일환으로 대규모 신용회복지원 조치를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2020년 1월부터 올해 8월 사이에 발생한 5000만원 이하 연체 채무를 올해 말까지 상환한 경우 연체 기록을 전면 삭제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나이스(NICE)신용평가와 한국평가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이번 신용사면 대상자는 △개인 295만5000명 △개인사업자 74만8000명 등 총 370만3000명에 달한다.

 

이 중 70%인 약 257만7000명은 이미 빚을 상환했으며, 이들은 30일부터 곧바로 신용불량 기록이 말소된다.

 

아직 채무를 갚지 못한 112만6000명도 연말까지 상환하면 별도의 신청 없이 자동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신용점수 40점↑…20대 효과 가장 커

 

신용사면의 가장 큰 효과는 ‘신용점수 개선’이다. 금융위가 이미 상환을 마친 대상자를 분석한 결과, 개인 신용점수는 평균 616점 → 656점(+40점)으로 상승했다.

 

20대의 평균 상승 폭이 50점으로 가장 컸다. 사회 초년생이 신용불량에서 벗어나 금융 거래 기회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연령대별 상승 폭은 30대(+42점), 60대 이상(+38점), 40대(+37점), 50대(+36점) 순이었다.

 

이로 인해 약 29만명이 신규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고, 약 23만명은 은행 대출 문턱을 넘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개인사업자도 평균 696점 → 727점(+31점)으로 개선된다.

 

숙박·음식점업, 도소매업 등 생활 밀착 업종에서 약 2만명의 소상공인이 은행권 대출을 새롭게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역대 최대 규모” 긍정 vs “신용점수 인플레이션” 우려

 

이번 조치는 역대 정부 중 최대 규모다. 2021년 문재인 정부 때 250만명, 2024년 윤석열 정부 때 290만명이 연체 기록을 삭제받았지만, 이번 규모는 그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우려도 적지 않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반복적인 신용사면 정책으로 인해 신용점수 하락 요인이 약화되면서, 고신용자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신용점수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사들이 자체적으로 더 엄격한 평가 모델을 도입하거나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책 효과의 성패는 단순한 기록 말소를 넘어 빚에서 벗어난 이들이 다시 건전한 금융 생활로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후속 대책에 달려 있다.게티이미지

일각에서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한다. “어차피 국가가 구제해줄 것”이라는 인식이 퍼지면 상환 의지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금융 교육, 채무조정 제도 보완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의 진짜 시험대는 ‘내년’?

 

단기적으로는 서민과 소상공인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금융질서를 흔들지 않고 효과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번 조치로 개선된 신용도가 실제 경제활동 확대로 이어질지, 아니면 단기적 ‘착시 효과’에 그칠지는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신용사면은 민생경제 회복과 금융 포용 강화라는 순기능과 신용평가 체계 왜곡·도덕적 해이라는 부작용 가능성이 맞서는 전형적인 ‘양날의 칼’이다.

 

결국 정책 효과의 성패는 단순한 기록 말소를 넘어 빚에서 벗어난 이들이 다시 건전한 금융 생활로 안착할 수 있도록 돕는 후속 대책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