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내 인생의 황금기에요.”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는 구문임(76)씨는 요즘이 삶에서 가장 좋은 시기로 느껴진다. 30여년간 국무총리실에서 ‘터줏대감’처럼 공직에 몸담았던 그는 퇴직한 뒤 전통 장을 담그는 ‘장금이’로 변신했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이 수행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에 5년 전부터 참여해 고추장, 된장 등 전통 장을 직접 제조하고 판매하면서다.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은 공동체사업단 중 하나로 ‘장체험관 및 장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복지관의 5층 장카페에서 만난 구씨는 “공직에서 퇴직한 후 집에서 쉬는 게 그렇게 좋았다. 그러다 2∼3년이 금방 지나갔다. 적적하고 심심할 차에 주변에서 복지관을 소개해줬다”며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을 하니 천국이 따로 없다. 쉬지 않고 진작에 시작할 걸 그랬다”고 웃었다. 하루에 4시간씩 한 주에 이틀 근무하는 구씨는 매달 35만원가량을 번다. 이 돈으로 악기 등을 배우며 취미 생활도 즐긴다.
구씨는 “먹을 줄만 알지 평생 장을 담근 적이 없었다. 매우 어려운 작업인데, 지금은 꾸준히 배워 아주 잘한다. 담글 때마다 어머님 생각이 난다”며 “여기서 친구도 사귀고, 보람도 느낀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구씨는 “무엇보다 일자리를 갖고 활력이 생겼다. 건강에도 좋다”고 강조했다.
이곳에는 구씨를 포함해 장금이로 불리는 노인이 20명에 달한다. 모두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자다. 전통 장과 전통 음료, 수제청 등을 만들고 판매까지 한다. 어르신 재능 주도형 일자리로 장 문화를 확산하는 효과도 얻는다. 종로구는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만큼, 전통 장 활용한 요리∙장 만들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취약계층에 나눔 활동도 하며 노인들에게 또 다른 뿌듯함을 선사한다.
제1대 장금이로 13년간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 중인 조용숙(87)씨는 봉사로 시작했던 활동이 어느덧 ‘일자리’가 됐다. 단지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건강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어느새 가장 ‘선배’ 장금이로 장 문화 전승에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 조씨는 “워낙 새로운 걸 좋아한다. 현재도 장 담그는 것뿐만 아니라 드럼도 배우고 있다”며 “치매도 걸리지 않고, 마음도 늘 즐겁다”고 기뻐했다.
노인 장금이들이 활약하는 해당 노인일자리 사업은 매우 우수한 사례로 꼽힌다. 조계종이 운영하는 종로노인복지관은 전통적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종로구라는 지역 특성상 전통 장과 관련된 노인 일자리 사업을 하기에 특화된 곳이다. 노인들이 재능을 활용해 민간형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드는 상황에서 노인일자리는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현재 노인 빈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에서 가장 높고, 노인자살률도 10만명당 40.6명으로 여전히 높다. 노인일자리 사업은 일을 통해 노인들에게 소득을 제공하고, 우울감을 줄여준다는 차원에서 효용성을 높여야 하는 필수 과제다.
정부는 우선 예산을 확대해 노인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2004년 2.5만개로 시작했던 노인일자리는 지난해 103만개, 올해 109만개, 내년 115만개로 불어나고 있다. 노인인구 10% 수준에 달한다. 예산도 2004년 264억원에서 올해 2조1847억원, 내년 2조3851억원으로 늘어난다.
그러나 단순히 일자리 ‘양’을 늘리기보다 ‘질’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 사찰음식의 대가이자 종로노인복지관의 관장인 정관스님은 이날 “노인일자리에 대한 시니어들의 열망이 크다”며 “양보다는 질적으로 좋은 노인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노인들이 활기와 보람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노인일자리가 늘면서 동시에 증가하는 안전사고부터 막겠다는 방침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20~2025년 8월) 노인일자리 안전사고는 1만7618건 발생했다. 2020년 2048건에서 2021년 2985건, 2022년 3240건, 2023년 3629건, 2024년 4036건, 2025년 8월 기준 1680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박문수 복지부 노인지원과장은 “노인일자리가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안전관리가 중요하다. 올해 안전 전담 인력을 확보해 배치할 예정이다. 2∼3년 내에는 모든 수행기관에 안전전담인력을 배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 고위험 사업단 613개소부터 각 1명씩 안전전담인력을 배치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처럼 관리할 인력은 급격히 늘고 있지만, 관리 기관인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인력 부족 문제에 부딪히고 있다. 안전관리체계 추진을 위한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내 사업안전부 인력은 올해 5명만 충원된 상태다. 노인들의 안전과 질 좋은 일자리 공급 및 관리를 위해서는 관련 인력이 더 확대되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박문수 복지부 과장은 “안전사고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노인들의 신체 역량과 일자리 수행환경 불일치에서 비롯된다”며 “올해 초부터 연구용역을 실시해 근로능력평가지표를 개발하고, 일자리 유형별 위험성 평가 지표를 만들고 있다. 이를 통해 보완할 부분은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