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비자로 한국에 입국한 A씨는 한국 남성과 사귀던 중 아이를 갖게 됐다. 친부는 A씨의 임신 사실을 알자 연락을 끊어 버렸다. A씨는 무슬림 인구가 많은 국가에서 왔다. 가족이 혼외 임신 사실을 알게 되면 비난이 쏟아질 게 뻔했다. 가족의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A씨는 비혼모 지원 시설에서 출산한 후 쉼터에서 몸을 추렸다.
A씨처럼 한국에서 체류 중인 외국인 여성과 한국 남성 사이에서 혼외 관계로 태어난 자녀의 출생신고와 국적 취득 문제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국회입법조사처가 지적했다.
입법조사처는 6일 ‘비혼 외국인 여성 양육 지원을 위한 국민의 양육자 개념 도입 필요’ 보고서를 통해 국내에서 한국 남성과 사이에 자녀를 출산한 외국인 여성이 법률혼에 이르지 못해 출생등록, 복지 지원, 체류 자격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입법조사처는 “30여년 전 필리핀에서 현지 여성과 아이를 낳고 책임을 회피했던 ‘국외 혼외자’ 문제가 국내에서 재현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국적법상 속인주의를 적용하기에 한국인 아버지를 둔 경우 국내에서 태어난 아동은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가질 수 있다. 다만 법률혼 관계가 아닌 경우 출생신고만으로는 국적 취득이 안 되고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인 아버지가 잠적해 도움을 받기 힘든 상황에서 비혼 출산한 외국인 여성이 출생신고 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법률혼 관계가 아닌 외국 여성이 아이를 낳을 경우 아동의 출생신고는 어머니의 모국에 해야 한다. 그러나 라오스, 네팔 등 일부 국가에서는 어머니가 아닌 가족 대표자만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한국 내 대사관·영사관이 없어 출생신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한국인 아버지가 자녀를 거부할 경우 법적 소송이 필요하다. 이 경우 국적 취득에 최소 2개월에서 최대 1년 6개월이 걸린다. 비혼 출산으로 방문 동거(F-1) 체류 자격을 받았을 경우 취업이 금지돼 여성 홀로 아이를 기르기도 쉽지 않다. 또 아이를 낳은 외국 여성이 국적 취득 절차를 진행하거나 복지 지원을 받으려면 외국인 등록을 필수로 해야 하는데 이 때 불법 체류 기간에 따른 최대 3000만원의 범칙금이 큰 장벽이다.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미혼모로서는 범칙금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국민의 양육자’ 개념을 도입해 한국인 남성과 법률혼 관계가 아닌 외국 여성이 한국 국적 자녀를 무사히 양육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입법조사처는 제22대 국회에 계류 중인 ‘외국인 아동 출생등록제’ 도입 관련 법안을 신속히 입법하면 이같은 미등록 아동 문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또 아동수당법, 영유아보육법, 유아교육법의 지원 대상에 ‘국적 취득 절차를 밟고 있는 아동’을 명시적으로 추가할 것을 주장했다. 아울러 ‘국민의 양육자’ 개념을 도입해 외국인 비혼모가 한국 국적 아동의 양육 기간에 법적 보호와 복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