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X야 나와!”
지난해 11월 경기 시흥의 한 건물 5층 옥상. 맞은편 건물 3층에서 필로폰 유통책을 감시하던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팀장과 상대의 눈이 마주쳤다. 오후 7시부터 이튿날 오전 3시까지 8시간 동안 잠복하던 중이었다.
당시 조선족 유통책 두 명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필로폰을 소분하고 있었다. 위를 올려다보다 팀장과 눈이 마주친 한 명이 맞은편에 앉은 동료에게 무언가 속삭였다. 곧이어 그 동료가 주차장으로 뛰어내려가 차 트렁크에서 칼날 길이 약 20㎝의 칼을 꺼내 팀장이 있는 옥상으로 올라왔다.
당시 옥상 문 도어락 손잡이는 고장나 빠져 있었다. 목장갑으로 비어 있는 구멍을 간신히 막아놨는데, 칼을 든 남성이 계속 찌르자 목장갑이 빠졌다. 팀장은 등으로 문을 막았고, 상대는 손잡이 구멍으로 칼을 휘두르며 욕설과 함께 나오라고 소리쳤다. 약 5분간 긴박한 대치가 이어졌다. 30년 경력의 팀장은 급히 밑에 대기 중이던 팀원들에게 연락했다. 서너 명의 형사가 곧바로 달려와 칼을 든 남성을 제압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 조선족 유통책은 형사들을 다른 마약 조직으로 오인했다고 진술했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이 피의자를 포함해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필로폰을 판매하는 총책 A씨, A씨와 공모해 수도권 일대에 필로폰을 유통한 조선족 피의자 등 총 122명을 검거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중 56명은 구속됐다.
경찰은 필로폰 1660g(시가 55억원 상당, 약 5만5000명 동시 투약분)과 야구배트·회칼·무전기 등을 압수했다. 또 범죄수익 2950만원에 대해 기소 전 추징보전 조치했다.
경찰에 따르면 검거된 122명 중 108명이 조선족이었다. 유통책 56명 중 49명, 매수·투약자 66명 중 59명에 달했다. 총책 A씨가 과거 수사로 와해된 국내 유통망을 재건하기 위해 내국인보다 상대적으로 유대감이 깊은 조선족을 집중적으로 포섭한 것으로 파악됐다. 유통책들은 대부분 단기간에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총책 A씨는 2019년 4월 필로폰 수수·소지 등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같은 달 중국으로 강제추방됐다. 경찰은 2023년 5월 A씨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를 요청했으며, 지난 5월 한·중 치안 총수 회담에서 핵심 피의자로 선정해 신속 검거를 요청한 상태다.
총책 A씨에게 고용된 유통책 56명은 2023년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수도권 일대 주택가 우편함 등 3058회에 걸쳐 필로폰 1890g을 은닉한 뒤 그 좌표를 총책에게 전달했다. 매수자 66명은 총책에게 대금을 지급하고 SNS를 통해 받은 좌표에서 필로폰을 찾아 주거지 등에서 투약했다.
남성신 마약범죄수사대 1계장은 “최근에는 위험 분산을 위해 ㎏ 단위가 아닌 100g 정도 소량으로 유통하고, 주택가가 아닌 산·사찰·낚시터 등 인적이 드물고 폐쇄회로(CC)TV 감시를 피할 수 있는 곳을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조선족 유통책 중 한 명은 선박을 이용해 국내로 밀입국한 뒤 유통책으로 활동했다. 이 피의자는 2021년 6월 별개의 필로폰 유통 사건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형기를 마친 뒤 2023년 3월 중국으로 강제추방됐으나, 같은 해 9월 다시 밀입국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밀입국 사실을 숨기기 위해 경찰 조사 과정에서 친형의 인적사항을 제공한 것으로 드러났다.
남 계장은 “유통책들은 단기간에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범죄에 가담하지만, 총책들은 유통책을 언제든 검거 가능한 소모품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어떤 경우에도 마약류 유혹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