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자녀를 데리고 재혼한 A씨는 최근 이사하면서 학교에 등본을 제출해야 했다. 그런데 등본에는 아이가 ‘배우자의 자녀’로 기재돼 있었다. A씨는 재혼 사실이 드러나면 아이가 위축되거나 편견 어린 시선을 받을까 걱정이 앞섰다.
앞으로 주민등록등·초본에서 ‘배우자의 자녀’라는 표현이 사라진다. 오랫동안 재혼가정의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이어진 데 따른 조치다. 다만 당사자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기존 표기 방식이 유지된다.
행정안전부는 13일 재혼 가정의 사생활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 ‘주민등록법 시행령’과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각각 입법 예고한다고 12일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등·초본에는 재혼가정의 자녀가 ‘배우자의 자녀’가 아닌 ‘세대원’으로 표시된다. 배우자의 부모나 형제도 모두 세대원으로 표기되고, 그 외 가족은 ‘동거인’으로 간소화된다. 다만 민원인이 원할 경우 기존처럼 ‘배우자의 자녀’, ‘삼촌’, ‘조모’ 등 가족관계를 자세히 표기하도록 선택할 수 있다.
이번 법 개정은 매년 발급되는 주민등록표 등·초본에 재혼 사실이 원치 않게 드러나 ‘과도한 사생활 침해’라는 비판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행안부는 2016년 주민등록표 등·초본에서 ‘동거인’으로 표기됐던 재혼한 배우자의 자녀를 ‘배우자의 자녀’로 용어를 바꾼 바 있다. 하지만 이 말도 재혼 여부가 그대로 드러나 유명무실한 조치라는 지적이 이어졌다.
2021년에는 세대주와의 관계를 ‘계부·계모·배우자의 자녀’ 대신 ‘부·모·자녀’로 바꾸는 내용의 ‘주민등록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으나, 상속 과정에서 민법상의 가족관계를 혼란스럽게 한다는 의견이 있어 결국 시행되지 못했다.
이에 행안부는 2024년 6월 재혼가정의 문제에 대한 개선안을 강구하기 위해 ‘주민등록표 등·초본 교부 제도 개선’ 정책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이번 개정안은 그 결과물이다.
또 주민등록표 등본에는 외국인의 한글 성명과 로마자 성명을 모두 표기할 수 있게 됐다. 외국인의 경우 가족관계등록 서류에는 이름이 한글로 표기되고, 주민등록표 등본에는 로마자로 표기돼 동일인임을 입증하기 어려웠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아울러 ‘전입신고 사실 통보서비스’ 신청 및 전입신고 시 민원인이 지참해야 하는 구비서류가 간소화된다. 앞으로는 신청인이 ‘행정정보 공동이용’을 통한 개인정보 조회에 동의할 경우 건물 등기부 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등 별도 서류를 준비할 필요 없이 한 장의 신청서 작성만으로도 편리하게 해당 민원 신청·신고가 가능하다.
윤호중 장관은 “이번 주민등록법 시행령 개정으로 오랜 기간 불편을 겪어 온 재혼가정의 불필요한 사생활 침해 문제와 외국인의 신원 증명 불편 문제를 해소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다음 달 23일까지 입법예고 기간 국민, 관계기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해 개정안에 반영할 계획이다. 개정안은 관보와 국민참여입법센터에서 볼 수 있고, 관련 의견은 우편, 팩스, 국민참여입법센터를 통해 제출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