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전격 사의를 표명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은 사실상 ‘검란(檢亂)’ 수준의 내부 반발이 이어지자 더 이상 직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 거취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노 대행은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항소 포기를 두고 전국 지방검찰청과 지청을 이끄는 검사장·차장검사들뿐만 아니라 자신을 지척에서 보좌해온 대검 간부들과 평검사급 검찰연구관들까지 들고 일어나면서 ‘불명예 퇴진’을 한 검찰 수장으로 남게 됐다.
노 대행은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날 하루 연가를 쓰고 두문불출하며 고심을 한 그는 이날 서울 서초구 대검 청사로 정상 출근했다. 노 대행은 출근길에 쏟아진 취재진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청사로 들어갔다. 그는 출근 직후 검사장급인 대검 부장들을 소집해 진행한 오전 회의에서 자신의 거취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보겠다’는 취지로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후까지 노 대행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서 검찰 안팎에선 ‘대통령실과 법무부의 뜻이 작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노 대행이 사퇴하지 않는 건 100% 용산(대통령실)과 과천(법무부)의 뜻”이라며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가 적정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진퇴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차장검사는 “(노 대행) 본인이 사퇴하지 않으면 검찰 내부는 더 분열되고 정치권에서는 또 ‘항명’이라며 징계를 한다고 할 것”이라며 “후배들이 다칠 뿐 아니라 현재 (총장 대행으로서) 지휘력이 없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게 있느냐”고 꼬집었다.
내년 10월 검찰청 폐지 등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 정부조직법 시행을 앞두고 세부안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수장 공백 상태가 검찰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며 사퇴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으나, 이미 사퇴 외엔 다른 길이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종일 논란이 이어지자 결국 노 대행은 퇴근 시간이 임박한 오후 5시30분쯤이 돼서야 사의 표명을 공식화했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후 닷새 만이다. 대검의 한 부장은 “(노 대행이) 고심 끝에 결심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난달 30일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에 대한 1심 선고 이후 서울중앙지검 수사·공판팀은 항소를 제기하기로 했지만, 노 대행이 ‘신중하게 검토하라’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의견을 전달받고 항소를 불허했다. 결국 항소 시한인 8일 자정까지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으면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를 비롯한 업자들의 일부 무죄가 확정됐다. 이 사건과 관련해 특정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것을 두고 정치권과 검찰 안팎에서 거센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8일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한 뒤로도 검찰 수뇌부를 겨냥한 책임론이 들끓자 노 대행은 9일 입장문을 내 자신이 정 지검장과 협의해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 지검장이 1시간여 만에 “대검의 지휘를 수용하지만, 중앙지검의 의견이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이번 상황에 책임을 지기 위해 사의를 표명했다”고 하면서 책임 공방으로까지 비화했다.
아울러 노 대행이 10일 항소 포기의 경위 설명을 요구하는 대검 연구관들에게 “(검찰과) 용산, 법무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대장동 민간업자들에 대한 항소 포기 결정을 내렸다”는 취지로 설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실과 법무부가 외압을 가한 것 아니냔 의혹이 짙어졌고, 논란은 점입가경이 됐다.
사표가 수리되면 노 대행은 2012년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에 대한 검찰 내 집단 반발로 물러난 한상대 전 총장에 이어 13년 만에 검찰 구성원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고 스스로 물러나는 검찰 수장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