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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 1% 미만… ‘범죄피해평가’ 예산에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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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제도 도입 10년째

심리 전문가가 피해 내용 평가
양형·영장청구 등에 반영 취지
피해자 제도 만족도 96% 불구
예산이 수요 충족 못하는 상황

“범죄피해평가 보고서에 의하면 피해자는 이 사건 범행 이후 불안, 긴장 수준이 높아졌고 20∼30대 남성에 대한 불안, 대인기피증상이 심해지는 등으로 지속적인 상담이 필요한 상태로 진단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이는 지난달 전주지법 남원지원 형사1부(재판장 김정웅 지원장)가 성폭력처벌법상 장애인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하면서 양형 이유를 밝힌 내용 중 일부다. 양형 가중 사유로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을 고려하면서 경찰이 제출한 ‘범죄피해평가’ 보고서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A씨는 지난 4월 한 시설 내 화장실에서 자폐성 장애가 있는 피해자를 강제로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범죄피해평가는 이처럼 피해자의 구체적 피해 내용을 가해자 양형이나 구속영장 발부에 반영하기 위해 경찰이 운영 중인 제도다. 경찰이 위촉한 심리 전문가가 신체·심리·경제·사회적 피해를 종합 평가하는 게 골자다. 피해자의 형사절차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2016년 시범 도입해 2023년부터 전국 시행 중인 범죄피해평가가 올해로 도입 10년째를 맞았지만 최근까지 시행률이 1%도 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8월 기준 강력범죄(살인, 강도, 강간·강제추행, 폭력) 26만7139건 중 범죄피해평가가 실시된 건 모두 1640건으로 시행률이 0.6%로 집계됐다. 전국에서 범죄피해평가를 시작한 2023년 같은 경우도 시행률이 0.4%, 지난해는 0.5%로 평가 건수가 증가세를 보이긴 하나 여전히 미미한 형편이다.

 

나아정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문위원은 2026년도 경찰청 소관 세입·세출예산안 검토보고서에서 “범죄피해평가 제도는 피해자 만족도 96%, 타 피해자 권유 의향 93%로 매우 높은 만족도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강력범죄 대비 시행률이 0.6%에 불과해 제도 확산이 미흡한 상황”이라고 했다.

경찰 측은 개개 범죄마다 성격이 다른 만큼 예산 한도 내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범죄피해평가를 시행 중이란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범죄피해평가를 할 수 있는 예산은 정해져 있고, 강력범죄라고 하더라도 각 범죄마다 내용이 다른 만큼 필요한 데에 최대한 많이 평가를 실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범죄피해평가 시행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예산이란 설명인데 이번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이 사업 예산은 올해 실적을 기준으로 추산한 예상 수요를 충족하기에도 모자란 형편이다.

 

정부가 내놓은 예산안에는 2∼3주 걸리는 기본평가 1900건, 3∼5일 걸리는 신속평가 420건 등 범죄피해평가 총 2320건을 소화할 수 있는 전문가 수당 4억4700만원이 반영돼 있는 상태다. 신속평가의 경우 구속영장 청구 등 긴급한 경우에 활용된다. 올해 1∼8월 실적(기본평가 1454건·신속평가 186건)을 연간으로 환산하면 내년 범죄피해평가 예상 수요는 2480건으로 추산되는데, 정부안으로는 160건 정도를 소화할 수 없는 것이다.

 

나 전문위원은 “최근 스토킹·교제폭력 대응 강화 분위기를 고려할 때 내년에는 신속평가 수요가 약 480건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부안에는 420건 분량만 반영돼 있다”며 “제도 활성화를 위한 개선방안 마련과 시·도청별 실태 파악을 위한 구체적 점검 계획을 시행하는 걸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